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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큰고니27
밝은큰고니2723.07.13

조선시대에 사관의 독립성은 어느 정도였나요?

현재 전해지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은 위대한 문화유산으로서 조선시대의 사관들이 기록했다고 하는데요. 사관들은 왕이나 다른 권력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록했을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 사관의 독립성은 어느 정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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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관의 일은 국왕과 신하들의 언행외에도 당시 정치나 행정에 관한 일의 득실과 관원의 잘잘못 등을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는 일을 했습니다.

    이들이 적은 글들은 관리, 임금도볼수없었습니다.

    임금이 죽고 실록을 편찬하게 될 때 사관은 일정 기한 내에서 사초를 춘추관에 납부하게 되는데 정해진 기간 안에 사초를 내지 않으면 해당 사관의 자손을 관리로 등용하지 않는 등의 불이익이 있었다고 합니다.

    글을 쓸때 독립성은 인정되었으나 종종 사초를 보려고 시도한 임금들도 있었으며, 다양한 불이익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완전한 독립은 힘들었을 듯 합니다.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책은 편찬이 완료되면 국왕에게 바쳤지만 조선왕조실록은 예외였다. 편찬의 완성만을 총재관이 국왕에게 보고하고 춘추관에서 봉안 의식을 가진 후 춘추관과 지방의 사고에 보관하였다. 왕의 열람을 허용하면 실록 편찬의 임무를 담당한 사관의 독립성이 보장을 받지 못하고 사실史實이 왜곡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왕이나 다른 권력자들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관들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내기 위해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하였습니다. 왕의 실록은 반드시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되었으며, 임금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관들은 독립성과 비밀성을 부여받아 사소한 사항까지도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작성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관의 독립성은 때때로 왕이나 감수관 등의 상관에 의해 침해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는대요. 사관도 자신이 직필한 사초로 말미암아 화를 입을까 두려워하여 직필을 기피하거나, 또는 엄격한 금지법에도 불구하고 사초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삭제하거나 바꾸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사관의 독립성은 원칙적으로는 보장되었으나, 실제로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제약되거나 침해되기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