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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달한거북이38
활달한거북이3823.12.11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을 어떻게 보관하고 관리했는지 궁금합니다 .

조선시대의 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문헌이

조선왕조실록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듭니다.

조선시대에도 이 조선왕조실록을 관리 했을 건데요~!!

어떻게 보관하면서 관리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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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록이 소실될 것을 우려해 4부로 편찬해 처음엔 한양의 춘추관과 나머지 3개는 지방(충주, 성주, 전주) 총 4개의 사고에 보관하였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전주의 실록을 제외한 모든 실록이 소실되어 버렸고 광해군때부터 5부로 편찬해 춘추관과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에 보관되었다가 이후 묘향산의 실록은 적상산에, 마니산의 실록은 정족산으로 옮겨졌고 경술국치 이전까지 계속 보관되어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현재 적상산본은 북한에, 오대산본은 일본에 갔다가 지진으로 소실되었고, 나머지 실록들은 그대로 한국에 남아있으며 각자 서울대학교, 국가기록원, 국립고궁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런 왕조의 실록들을 기록 뿐아니라 보관에도 아주 신경을 썼답니다.

    고려실록은 2부를 만들어 한부는 궁궐에 한부는 해인사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오랑케들의 침략해 유실 되는 것을 보고, 조선왕조실록은 항상 4~5부를 만들었습니다.

    1부는 한양의 춘추관에 두고 3부는 지방 세곳, 충주, 전주, 성주에 사고를 설치하여 보관했고, 3년에 한 번씩 꺼내 볕에 말리는 '포쇄'라는 작업을 하여 곰팡이가 슬거나 좀이 먹는 것을 방지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록을 인쇄하고 나면 사초와 실록청에서 작성한 원고들을 모두 폐기했어요. 지금 종로구에는 세검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요. 그 부근 냇가에서 종이를 물에 담가 먹물을 없애는 세초를 합니다. 무엇보다 실록에 담긴 국가의 주요 기밀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어요.

    완성된 실록은 복사본의 오탈자를 막기 위해 활자로 4부를 인쇄해서 한양의 춘추관에 한부를 두고, 나머지 3부는 지방에 사고를 설치하여 봉인하여 보관하였습니다. 봉인된 실록은 그 누구도 볼 수 없었습니다. 지방의 세 곳은 충주, 전주, 성주입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전주 사고를 제외하고 소실되자 이렇게 유실된 실록은 광해군 때 춘추관과 함께 마니산, 오대산, 태백산, 묘향산에 사고를 마련하고 전쟁 이후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다시 출판하여 실록 5부를 다시 완성하여 보관하였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춘추관 사고본은 모두 불타 없어지게 됩니다. 당시 청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묘향산 사고본은 적상산으로 마니산 사고본은 정족산으로 이전시켜 보관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대부분 서원에 보관, 서원은 왕실에서 운영하는 문서 보관소로 국가 기록물과 서가 등이 안정적으로 보관될 수 있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서원 외에 별도의 별관이나 비석에 일부 기록물을 보관했는데 특히 중요한 기록이나 문서는 다양한 장소에 중복해 보관해 안전성을 확보했습니다.

    또한 전승제도를 통해 세손에 걸쳐 전해지는데 보통 왕이 퇴위, 사망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왕이 즉위하게 되는데 이때 전임 왕이 기록한 조선왕조 실록을 새로 즉위한 왕에게 전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록은 춘추관에 1개를 두고 나머지 4개는

    지방에 만들어둔 사고에 1개씩 보관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