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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동고비63
우람한동고비63

한국사 고1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독립 노선이 세가지 (외교론,실력 양성론,무장 투쟁론 )으로 나뉘고 1923년에 외교 독립론과 무장 투쟁론의 갈등으로 국민대표회의가 열려 창조파와 개조파로 나누어진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선생님이 창조파가 무장 투쟁론이 이어진 것이고 개조파가 외교론이 이어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맞는건가요?공부하다보니 안 맞는게 많아서요..이동휘는 무장투쟁론자인데 개조파이고 이승만은 외교론인데 창조파이잖아요..제가 잘못알고 있는게 있으면 고쳐주세요..ㅠㅠ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와 교통국의 파괴, 외교 투쟁의 한계, 이념 분쟁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임시정부는 이승만의 국제연맹 위임통치 청원을 계기로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국민대표회의는 독립 투쟁 방략 모색하였으나 임시정부의 진로 문제를 놓고 개조파와 창조파로 분열, 대립되었습니다. 개조파는 외교 투쟁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임시정부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유지하자는 것이고, 창조파는 애초부터 외교투쟁이 잘못되어 만주, 또는 연해주에 새로 임시정부를 만들어 무장투쟁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국민대표회의는 결렬되었으며, 임시정부는 침체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국민대표회의가 소집하되지게 원인제공자라 참여하지 않았으며, 이동휘는 이승만과 갈등으로 1921년 임시정부와 결별한 상태였으나 개조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