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왕의 남하정책은 4세기 백제 근초고왕의 공략에 대한 보복도 있지만 현실적 지정학, 경제, 왕권 강화 목적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성보다 새로운 수도인 평양은 북조를 우회하지 않아도 남조와 관계에 유리하고,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 중국과 직접 교류가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북위, 북연 등의 충돌을 피하면서 백제, 신라를 압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황해도, 경기도의 비옥한 곡창 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국내성의 보수 귀족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천도를 단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