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민족유일당 운동의 결과로 비타협적 민족주의 인사들과 사회주의 인사들이 신간회가 조직하였습니다. 신간회는 당시 최대 민족 운동 단체로 국내에 지회를 두고, 4만명 이상의 회원이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민중대회 실패 이후 새로운 집행부가 자치운동가들과 연대하려 하자 사회주의자들이 이를 비판하고, 코민테른의 노선 변경으로 해소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1931년 신간회는 해소되었습니다.
해소된 이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 농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혁명적 농민조합과 노동 조합을 조직하고, 항일 독립을 전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