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계속 마시면 기억이 안 나는 이유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성별

여성

나이대

20대

"우리가 술을 많이 마시면 소위 '필름이 끊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단순히 기억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우리 뇌의 '해마'라는 곳이 알코올 때문에 일시적으로 마비되어서 새로운 기억을 아예 저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데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해요. 정보가 입력은 되지만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지 않아서 나중에 떠올릴 저장 데이터 자체가 없는 상태가 되는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1개의 답변이 있어요!

  • 네, 핵심은 “취해서 기억을 나중에 못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새로운 일화기억 자체가 제대로 저장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알코올성 블랙아웃은 의식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와 다릅니다. 겉으로는 말하고, 걷고, 반응하고, 심지어 비교적 목적 있는 행동도 할 수 있지만, 해마가 단기 정보를 안정된 장기 기억으로 고정하는 과정이 일시적으로 크게 망가져서 나중에 회상할 “기록본”이 충분히 남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오래전 기억이나 이미 형성된 기억은 비교적 남아 있어도, 술 마신 뒤 새로 벌어진 일은 통째로 비거나 군데군데 빠집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해마는 들어온 경험을 단순히 저장창고에 넣는 기관이라기보다, 여러 감각 정보와 상황 맥락을 묶어 “에피소드”로 인코딩하고, 이후 시냅스 수준에서 기억 흔적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의 대표적 생리 현상이 장기강화입니다. 알코올은 해마에서 흥분성 신호 전달, 특히 엔메틸디아스파르트 수용체 기능을 억제하고, 반대로 감마아미노부티르산 계열 억제성 신호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즉, 새로운 정보를 회로에 “각인”해야 하는 순간에 흥분성 가소성은 떨어지고 억제는 커지므로, 경험은 잠깐 처리되더라도 안정된 기억 흔적으로 굳지 못합니다. 그래서 “입력은 되었지만 저장이 안 된 상태”라는 표현이 비교적 정확합니다.

    임상적으로는 두 가지 양상이 있습니다. 일부만 띄엄띄엄 빠지는 형태를 조각형 블랙아웃이라고 하고, 특정 시간대가 통째로 없는 형태를 완전형 블랙아웃이라고 합니다. 조각형은 나중에 주변 단서나 대화를 들으면 일부가 떠오를 수 있지만, 완전형은 단서를 줘도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기억이 약하게 저장된 경우”와 “처음부터 저장이 거의 되지 않은 경우”의 차이로 이해하면 됩니다.

    왜 어떤 날은 유독 필름이 끊기느냐는 질문에는 “총량”보다 “상승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빠르게 올라갈수록 블랙아웃 위험이 커집니다. 짧은 시간에 몰아 마시기, 공복 음주, 도수가 높은 술을 빠르게 마시기, 다른 진정제와 함께 복용하기가 특히 위험합니다. 여성은 같은 양을 마셔도 체수분 비율, 알코올 분포 용적, 위에서의 대사 차이 등 때문에 평균적으로 더 높은 혈중알코올농도에 도달하기 쉬워 같은 음주량에서도 블랙아웃 위험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블랙아웃이 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완전히 의식불명”이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블랙아웃은 기억 형성 장애이고, 패싱아웃은 의식 수준 저하입니다. 둘은 겹칠 수 있지만 다른 현상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다음 날 아무 기억이 없어도, 당시에는 대화와 행동을 계속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사고, 성폭력, 낙상, 익사, 위험 행동과 강하게 연결됩니다.

    반복적으로 블랙아웃이 생기면 단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한 번의 블랙아웃은 급성 기억고정 실패이지만, 반복적 폭음은 특히 젊은 연령에서 해마를 포함한 뇌 발달과 기억 기능에 장기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다만 “블랙아웃 한 번마다 해마가 영구적으로 마비된다”는 식의 단정은 과장입니다. 급성 기전은 가역적 기능장애가 중심이지만, 반복 노출은 구조적·기능적 취약성과 연관될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현재 근거에 더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술로 필름이 끊기는 이유는 “기억을 꺼내는 기능”보다 “새 기억을 만들어 고정하는 기능”이 먼저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해마의 시냅스 가소성이 알코올에 의해 억제되어, 사건은 경험했지만 나중에 회상할 장기 저장본이 남지 않게 됩니다. 즉, 잊어버린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은 처음부터 제대로 저장되지 않은 것입니다. 출처는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연구소 자료와 대표 리뷰 논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