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이야기는 실제일 인가요?.
신라시대에 있었던 처용이야기는 어는정도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인가요? 설화라고 해도 어느정도 사실은 있을거같은데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용의 아들인 처용은 헌강왕을 따라 수도 서라벌에 와서 벼슬을 하는데, 어느 날 밤 역신(疫神)이 자기 아내와 함께 동침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용이 그걸 보고도 태연하게 노래를 지어 부르며 춤을 추었더니, 역신이 모습을 나타내 처용의 관대함에 감복하여 용서를 빌었다고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대문에 처용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붙여둔다면 그 집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겠다고하였답니다.
그 후부터 백성들은 처용의 형상을 그려 문간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가 나게 하였으며 그리고 헌강왕이 세운 절 이름을 망해사, 혹은 신방사라고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처용이야기는 실화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합니다. 실화설을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역신은 바로 헌강왕이라고 합니다. 대놓고 왕을 비판할 수가 없어서 역신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합니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처용이야기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용 이야기의 배경은 신라 말 헌강왕(875~886) 때입니다.
실제 이야기라기보다는 설화인 것 같습니다.
왕이 개운포에서 돌아오던 중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서 길을 잃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주변 신하에게 물었더니 천문을 담당하던 관리가 “이것은 동해 용의 조화*다.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죠.
*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를 뜻함
왕은 동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지어주도록 명했는데요. 그 절이 현재의 울주 망해사입니다. 왕이 명을 내리자마자 구름과 안개가 걷히고, 동해 용이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의 수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미했습니다. 춤을 추고 노래하며 기뻐하는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가 왕을 따라 들어와서 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그가 바로 처용입니다.
용의 아들인 처용을 붙잡아 두기 위해서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아주고, 벼슬도 내렸죠. 이후에는 잘 알고 있는 처용의 아내를 흠모한 역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신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처용 이야기는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는 처용을 신라 말 울산 지역의 귀족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왕이 지방 호족을 경계하기 위해 처용을 서라벌로 부르고, 서라벌로 온 처용에게 아름다운 아내와 관직을 주며 회유했다는 것이죠. 역신에 대한 부분도 서라벌의 부패한 귀족의 자제가 처용의 아내와 간통을 해서 처용이 실망해서 서라벌을 떠났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신라 말 울산은 국제 무역항이었다고 하는데요. 처용이 울산으로 유입된 이슬람 상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죠.
민속적 관점은 어떨까요? 처용이 마마신, 역신을 물리쳤다는 데 초점을 두고 처용을 무당이라고 해석합니다. 역신을 물리치기 위해 춤추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 사실은 무속 제의(제사의 의식)였다는 것이죠.
불교적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신라는 불교 사회였습니다. 동해 용은 나라를 지키고 불교를 수호하는 신을 말하고, 처용은 신의 아들로 그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불교를 널리 퍼트리는 방법이라는 해석입니다. 역신과 간통한 처용의 처는 방황하는 일반 중생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죠.
연극 또는 민속예술 측면에서는 처용의 춤과 노래에 집중합니다. 신라시대 가면극의 기원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순수 문학 측면에서는 처용과 처용의 처, 역신의 삼각관계 안에서의 처용의 심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네요.
[출처] 처용, 동해 용의 아들|작성자 해양수산부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처용이야기는 신라시대에 일어났다는 설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이야기의 내용이 지나친 상상력에 기반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동물들이 함께 지내며, 인간과 동물간의 친화력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이 이야기에서는 처용이라는 동물이 인간의 마음을 알아듣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등의 비현실적인 상황도 등장합니다.
따라서 처용이야기는 일종의 설화로서, 역사적 사실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동물애, 인간-동물 간의 유대감 등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문화 유산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응 처용 단군 이런 것은 민속 무속신앙 즉 종교에서 이런 것을 섬겼다 정도 입니다 ㅎ ㅎ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시대에 있었던 처용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설화가 얽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전해져 온 설화 중 하나로, 신라시대에 처용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하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처용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신라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들은 일부가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용이라는 인물이 도시(都市)에 있는 왕의 아들로 태어나 신하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처용이 살던 시대에 신라가 일본과의 왕복거래를 하며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맺었다는 점 등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먼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현대의 역사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그저 전통적인 설화나 전설 중 하나로 인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