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때, 흥화진이라는 작은성은 정말 함락되지 않았었나요?
안녕하세요
요즘 고려거란전쟁 역사 드라마에 빠져있는데요
엇그제 드라마를 보니, 흥화진? 이라는 곳에서 3천명으로 40만의 거란 대군을 막았다는데
정말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거란의 2차 침입시(1010년(현종 1)) 요나라의 성종(聖宗)은 40만 대군을 이끌고, 이곳을 첫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았으나 도순검사 양규(楊規)의 분전으로 인하여 함락시키지 못하고, 20만 대군을 남겨두고 개경으로 진격합니다.
1018년의 3차침입 때에도 거란군은 강감찬(姜邯贊)의 수공(水攻)으로 이곳에서 대패한 뒤 인접 강동육주에 대한 공격을 포기한 채 곧바로 개경으로 침공하였다가 패퇴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화진은 서희가 거란이 1차 침입(993)에서 담판으로 강동6주(江東六州)를 확보하고 995년에 구축한 압록강 방면의 요충지입니다.
거란은 흥화진을 선점하기 위해 고려 현종대에 수 차례에 걸쳐 침입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1010년(현종 1)에서 양규가 수성하여 거란이 끝까지 현종을 추격하지 못했고, 1017년(현종 8), 1018년(현종 9)에도 지켜 강감찬의 귀주대첩의 승리가 가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화진은 대중국 관계에서 군사상, 교통상의 요충지였으므로 거란의 끈질긴 반환요구의 대상이 되었고, 여러 차례 침공을 받았는데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이 시작되었을 때 요나라의 성종은 이곳을 첫번째 공격 대상으로 했으나 도순검사 양규의 분전으로 인해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1018년 3차 침입때에도 거란군은 강감찬의 수공으로 이곳에서 대패한 뒤 인접 강동육주에 대한 공격을 포기, 개경으로 침공했다가 패퇴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입니다. 양규가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거란군을 막았고 다만 7일 동안 전투에도 성을 무너 뜨리지 못한 거란군은 시간을 지체 하지 않고 바로 서경으로 방향을 돌립니다.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화진 전투는 1010년(현종 1) 거란 제2차 침입 당시 거란의 성종(聖宗)이 40만 대군으로 직접 고려에 침입하였다. 같은 해 11월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너 흥화진을 포위하고 고려의 항복을 종용하면서 전투는 11월 17일부터 23일까지 1주일 간 전개되었다. 흥화진에는 순검사(巡檢使) 양규(楊規)가 거란의 압박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여 적을 물리쳤고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