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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7.01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때 교육기관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제가 알고 있기론 향교/서당/성균관 이렇게 세개 정도 알고 있는데요 더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교육기관들은 일반 대중에게 다 오픈되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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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향교, 서당, 성균관 이외에 아래의 교육기관들이 있었습니다.


    □ 4부 학당(사학)

    서울에 설치된 국립 중등 교육기관인 동학, 서학, 남학, 중학


    4부 학당은 지방의 향교와 같은 등급의 교육기관으로 소학과 사서오경을 강독하였습니다. 정기적으로 시험을 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자에게는 성균관 입학 자격이나 진사시, 생원시 시험에 직접 응시할 자격을 부여했습니다.


    □ 서원

    사립교육기관(유생들을 교육)


    16세기부터 발달되었으며, 선현에 대한 제사를 드리고 유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서원에는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여러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학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학교로써 대표적으로 성균관, 사학(四學), 향교, 종학이 여기에 포함이 되며 요즘말로 공교육기관입니다


    사학(私學)이란 일종에 사립학교를 뜻합니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사림 세력이 지방 에 서원과 서당이 설립되어 인재 양성을 주도하며 정치세력화 합니다



    이 두기관이 조선 전기 중기에 교육을 책임진 우리 교육의 역사입니다


    조선 초기의 교육은 주로 성균관, 향교와 같은 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러나 중기 이후 사림 세력이 성장하면서 지방 각지에 서원이 건립되기 시작하였고


    서원은 경학(성리철학)을 중시하는 사림들에 의해 학문과 교육의 중심으로이전된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연스레 성리학이 발전 하게됩니다


    그러나 양란 이후 조선후기는 성리학의퇴조 실사구시가 요구되는 실학사상이 후기 시회제도 신분질서 경제 정치제도등등 각분야에 개혁 개방을 시도하게 되었으며 성리학의 페해가 국가기본질서 붕괴 왕조 붕괴 국가 멸망으로이어진 현실적이지 못한 교육 즉 일반 민중을위한 교육이 아니라 집권층 지배 계층의 전유물로서 할용된 교육이며 학문입니다




    종학(宗學)


    조선 시대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특수 교육 기관입니다


    "세종(世宗) 11년에 비로소 처음으로 종학을 세우고 문행(文行)과 학덕(學德)을 보급




    성균관(成均館) (관학으로 고등교육기관)


    서울에 있는 성균관과 학당(4학)은 중앙 정부에 직속되고 향교는 각 주현(州縣)에서 관할하던 관학(官學)으로서, 상호간에 상하의 연락 계통이 서 있는 것은 아니었고, 각각 독립된 교육 기관의 성격





    향교(鄕校)(지방 사립교육기관)


    고려 조선시대에 계승된 지방 교육기관으로서 국립 교육기관


    조선시대에는 전국에 1교씩 설립운용.





    궁궐내 원자(유아) 교육기관




    보양청:3세이전 육아 보육담당기구–(내명부가 관활)


    강학청:5세이후 교육기구 (내명부 관활)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 7세가되면 본격 교육기구


    세자시강원: 왕세자를 모시고 경서(經書)와 사적(史籍)을 강의하며 도의(道義)를 가르치는곳.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교육체제는 국가의 지도 이념인 유학을 보급하고 연구하는 체제로서, 국가에서 지대한 관심을 두었다. 태조는 즉위교서에 국가의 2대 치국정책으로 ‘농상(農桑)의 장려’와 ‘흥학(興學)’을 채택하였다. 국가의 2대 치국정책의 기본적 정책으로 흥학은 유학으로 민풍을 순화하고, 정무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가 지향하는 삼대(三代)의 이상적인 도덕 국가를 건설하는 의도였다. 그래서 교육기관에는 유학에 공헌이 큰 유현을 제향하고 국가의 인재를 양성하는 두 가지의 기능을 갖게 하였다. 학교에는 문묘(文廟) 혹은 사묘(祠廟)를 두고, 여기에 제향하는 것을 필수적인 행사로 하였다. 특히 성균관(成均館)이나 향교(鄕校)와 같은 관학에서는 문묘에 대한 제향이 가장 중요한 행사였다. 그리고 개인들이 설립한 서원(書院)에도 사묘를 두어 유현(儒賢)을 제향하였다. 학교는 법성현(法聖賢)을 교육 목적으로 추구하였다. 교육 내용으로는 유학의 경전이 중심이 되었으며, 그 외에 역사서와 문학서가 있었다. 조선의 교육체제는 시대에 따라서 변화가 있었다. 이를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체제의 확립기(태조~연산군, 1392~1506)이다. 조선의 왕권 확립과 조선사회의 지배체제와 교육체제가 확립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국가가 교육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교육사상의 확립, 교육체제의 확장과 정비, 교육과정, 교육 방법의 정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육과 과거 제도가 확립되어지는 시기이다. 특히 교육사상적 측면에서 숭유척불 정책을 과감하게 시행하였으며, 교육 제도에서 관학을 확장ㆍ정비하여 성균관, 사학, 향교가 발달하였다.

    둘째, 교육사상의 발전과 사학의 발달기(중종~경종, 1506~1724)이다. 조선 건국 이후 형성된 전통적 훈구파와 사림에서 학문 연구를 통하여 형성된 신진 사류 사이에 이념적 투쟁이 일어나고, 정치적으로 권력 투쟁이 발생된다. 사상적으로 성리학의 연구가 활발하여 대유학자인 서경덕, 이황, 이이 등을 배출하였다. 교육적으로는 국가의 교육 정책이 관학위주에서 개인이 설립하는 서원의 교육에 주도권이 이전되면서 서원의 교육이 크게 발전하였다.


    셋째, 실학 교육사상의 형성 및 발전기(영조~고종, 1725~1876)이다. 임진ㆍ병자의 병란이 있은 후에 사회적 변동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조선은 사화(士禍)와 당쟁(黨爭)으로 정치 체제가 문란해지고 정치적 혼란이 생겼다. 그리고 임진ㆍ병자의 양란으로 사회의 기강이 문란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이에 대한 반성과 문제 해결을 위한 실학사상이 대두하게 되었다. 실학자들은 청조(淸朝)의 고증학(考證學)과 서학(西學)의 영향을 받아 문제 해결을 구상하게 되었다. 교육적 측면에서는 학제의 개편, 국가의 교육 관리, 교육 내용에 자국 문화의 포함 등을 구상하였다.


    넷째, 근대교육의 형성기(고종~순종, 1876~1910)이다. 우리나라의 근대 교육의 도입기이다. 조선이 외국의 문물을 도입 수용하는 시기로서, 서양의 교육사상, 교육 내용, 교육 방법이 접촉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 운동이 전개되고 서양식 학교가 건립되어진다.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는 열강에 대항하여 민족 교육 운동이 일어난다. 민족 교육 운동은 재래의 학교교육인 주자학에 대한 반성으로 나타나고, 서양 교육사상에 의한 자주적 국가, 자주적 시민교육을 목적으로 학교교육을 형성하게 되었다.

    출처 : 한국 교육사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