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 남북 전쟁 이후에도 흑인 대부분은 남부에 거주했습니다. 특히 농촌의 면화 재배에 상당부분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1910년 기준 약 90%간 남부에 거주했습니다.
그 이유는 북부로 갈 돈과 교통수단, 일자리 정보가 부족했으며, 남부 소작농 제도와 가족 공동체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이주는 1910~1940년 약 160만명, 그리고 2차 대이주는 1940~1970년 약 500만명 이상이 북부, 서부로 이동했습니다.
특히 1차 대준 중 북부 공장, 철도의 노동력 부족, 유럽 이민 감소, 남부의 면화 가격 하락과 진딧물 피해, 짐크로 법과 인종 폭력이 겹치면서 이주가 급증했습니다. 이들의 주요 목적지는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같은 북부, 중서부 공업 도시였습니다. 그 결과 1970년대에는 47%만 남부에 거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