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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황조롱이
천연기념물 황조롱이23.01.08

조선시대 한글이 양반사회에 정착된 시기는 언제인가요?

세종대왕이 집현전학자들과 한글을 창제하여 백성들에게 보급하였으나 당시에는 양반사회에서는 천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글이 양반사회에 정착된 시기는 언제쯤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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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하셨기때문에, 대놓고 한글을 비하 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문종도 연산군도 한글에 대한 정리를 한 기록이 있고,

    연산군은 왕궁에 있던 궁녀가 한글로 보낸 편지때문에, 심문을 했다는 기록도 있고,

    숙종은 훈민정음 후서를 썼다고 하는 데, 어떤 책인지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숙종 때 남구만이, "요새 식년시에 구송만 시키니까 시골 애들은 아예 언문으로 공부해서 한문으로 서찰도 못 쓰는 것들이 과거급제자라고 들어오는 데 이러니까 삼사에서는 쓸 사람이 없어 허덕이죠."라고 말했다네요.

    초기부터 양반들도 한글을 한자 음표기에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양반이 여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한글을 사용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한글이 창제된 후 곧바로 양반들도 한글을 기록에 사용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한글이 양반들 사이에서 천대를 받았는 지의 문제는 세종의 후손이 계속 왕을 이어간 조선에서 양반이 대놓고 선대의 조상이 창제한 한글을 천대하는 발언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양반들 사이에 한글이 정착이 되지 않았다고 전제하는 것은 어떤 근거로 하시는 생각일까요?

    숙종 때 남구만의 한탄스러운 언급을 보아, 조선의 과거제를 한글로만 치렀다는 기록을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겠죠.

    연산군도 한문 책을 한글로 번역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고,

    숙종은 직접 한글로 책을 썼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기록을 무시하고 한글은 양반들에게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걸 바꿀 필요가 있겠죠.

    언문이라는 말도 세종대왕이 직접 언문청을 두라고 하셨기에,

    이 언문이라는 말을 언제부터 한글을 비하하는 단어로 인식했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양반의 기록에서 언문을 비하하는 문장이 없기때문이죠.

    한글을 비하하는 것은 선대 세종대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암클도 있는데, 여자들의 글이라고 암클이라 한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한글비하, 여성비하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오히려 양반사회에서 여성이 한문보다 한글을 더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중글이라하여 중(스님)이 쓰는 글,

    상말글은 상스러운 말을 적는 글이나, 상놈들이나 적는 글이라는 표현이 될 수도 있겠죠.

    반절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한자가 두 글자를 합하여 만든 단어라는 의미였기에,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만난다고 반절이라 불렀네요.

    이런 훈민정음 또는 한글에 붙여진 이름들을 한글을 비하하는 뜻으로 해석해야하는 지, 아니면 한글의 쓰임새를 표현한 것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죠.

    그리고 양반사회에 정착된 시기는 창제되고부터 바로 양반들도 사용한 것 같고요. 왕실도 한글로 편지를 썼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훈민정음으로 창제되자 마자, 전국 방방곡곡 한글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것이 한글의 우수성을 잘 표현하는 것 아닐까요?

    창제되자 마자, 한글이 사용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말을 쓰는 사람은 한글 문자를 배우기가 아주 쉬웠다는 것을 보여주죠.

    훈민정음, 한글이 천대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글은 한자의 보조 문자 역할을 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문서는 한자로 기록되었고, 개인간 편지같은 것만 한글을 사용했으니까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이 양반 사회등을 통해 널리 자리 잡은 시기는 아마도 19세기 정도는 되었을 것 이라고 여겨 진다. 그 이유는 18세기 영조 때만해도 영조 임금 조차도 글을 쓸때 한글을 전혀 쓰지 않았던 것 만 봐도 알수 있다. 한글은 아마도 19세기 홍길동전 이나 전우치전 등과 같은 한글소설이 나오느 시점에 서야 비로소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