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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3.08.26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를 어떻게 축출했는지?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막내리게한 인물인데요 어떻게 해낼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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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년시절

    그의 가난하고 빈궁한 생활에 안동김씨 세도가는 그를 멸시했고, 사영 김병기는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하였다. 사영 김병기 외에도 안동김씨 집안의 문객으로 출입하던 심의면, 안동김씨 세도가문과 적당히 거리를 두던 문신 출신 천문학자 남병철은 대놓고 흥선군을 멸시했습니다. 이 중 심의면에게 앙심을 품은 흥선군은 1863년 음력 12월 집권하자마자 심의면의 벼슬을 해임해버립니다.

    1864년 1월 16일 아들인 고종이 즉위하자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곧 흥선대원군에게 고종을 보필하라며 형식상으로 수렴청정을 행하니 이때부터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시작하였다. 흥선대원군은 안동 김씨 일문을 축출하고 문벌과 사색당파를 배제한 인사등용을 하였으며, 영의정에 조두순, 좌의정에 김병학, 훈련대장 겸 포도대장에 이경하를 임명했다고 합니다. 한편 집권 후 안동 김씨의 영수격이며 순원왕후의 동기간인 영의정 김좌근이 사임하였습니다. 1864년 판서와 좌찬성을 역임한 김병기는 광주부유수로 좌천되었습니다. 이후 김병기 등 일부 안동 김씨 세력을 축출하기도 했지만,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한 권력층의 명문 양반가를 일부 포섭하면서 조대비와의 동맹관계 및 김병학, 김병국 등 안동 김씨 일부 세력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대원군이 비변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안동 김씨 세력이 자연스럽게 퇴출당했다.[26] 영의정 김좌근이 사직하고 판서를 역임한 김병기는 광주부유수로 좌천당했다. 김좌근의 후임으로는 조두순이 취임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동김씨 일가를 모두 퇴출시킨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대원군과 사돈 약속을 맺었다는 김병학, 김병국의 경우 안동 김씨들이 퇴출당하는 과정에서도 정승을 역임하는 등 그와의 밀월관계를 지속하였습니다.

    의정부와 삼군부의 부활과 비변사의 유명무실화로 조선 중기 이후 군사와 행정기능이 한곳으로 집중된 것을 다시 분산시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