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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천사1004
Jy천사100424.04.24

선조가 광해군을 견제한 배경은?

안녕하세요 조선시대 선조는 자기아들인 광해군을 많이 견제한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왜 자기 핏줄마져 견제하면서 생활했는지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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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에게는 적자였던 영창대군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선조는 광해군을 견제하고 영창대군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광해군은 대북파와 함께 정치를 주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선조는 소북파를 지지하며 광해군과 대립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는 전쟁 초기의 안일한 대응과 제 목숨만 사리려 한 태도 때문에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큰 지탄을 받고 있었는데, 자신과 대응되는 세자 광해군이 분조 활동으로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자 불안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또 임진왜란 후반에 일어난 이몽학의 난, 김덕령 역모 사건 등의 반란으로 인해 선조의 입지는 더욱 불안해졌고 이와 같은 이유로 선조는 아들 광해군을 경계하고 불신 하게 된 것 입니다.


  • 안녕하세요. 권기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92년 왜군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왜군은 자신들이 했던대로 국왕을 잡으면 끝나는 전쟁일 것이라 생각하고 빠르게 북진하여 한성에 도착했지만 이미 선조는 북쪽으로, 중국과의 국경으로 도망가고 있었죠.

    여차하면 중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국경에서 대기를 타고 있었고, 오히려 명나라에서 만류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비겁한 선조는 그동안 세자 책봉을 하지 않고 있다가 급하게 광해군을 세자로 정하고 "분조(왕의 권한을 나누다)"를 통하여 광해군에게 군대를 이끌고 왜군과 싸우고 민심을 수습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위기에서 광해군은 조선정규군, 의병, 승병 등을 이끌고 왜군과 직접 나아가 싸우고 승전을 하며, 백성들을 보듬어 주기도 했죠.

    광해군의 활약에 명나라에서도 감탄하여 광해군을 칭찬하고, 전라도 지역 등은 광해군이 관리하라는 명령 내리기 까지 했습니다.

    빛나는 광해군의 활약에 위기감을 느낀 선조는 한양으로 돌아온 후에도 광해군의 아침 문안 인사도 받지 않고 철저히 무시했으며, 이런 와중에 적장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면서 선조는 광해군과 완전히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추가적으로 선조가 이즈음 죽게 되면서 아직 세자였던 광해군이 왕이 되고, 후에 영창대군이 사사되고, 인목대비가 유폐되면서 인조반정이라는 또다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장효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냐하면 지지율이 떨어져 식물정부(식물임금)이 될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조는 임진왜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이 결과 백성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때문에 지지율은 지속해서 떨어졌고. 이에 몇몇 신하들은 선조를 왕위에서 내쫒으려(선위 요구 논의) 하였고. 심지어 몇몇 이들은 반역을 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째 아들인 광해군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선조는 광해군이 자신의 권력을 빼앗을 수 있다고 경계하였고. 이 때문에 광해군이 자신의 친아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견제하게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위 계승 문제: 선조는 정비 의인왕후 박씨와 후궁 공빈 김씨, 인빈 김씨 사이에서 여러 왕자를 두었으나, 정비 의인왕후 박씨는 후손을 낳지 못하고 병으로 일찍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에 선조는 후궁 소생의 왕자들 중에서 왕위 계승자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광해군이 선조의 총애를 받아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선조는 적자이자 어린 아들인 영창대군을 편애하면서 광해군을 견제하였습니다. 광해군은 북인 세력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선조는 자신의 지지 세력인 서인 세력을 중심으로 광해군을 견제하였습니다. 또, 선조는 광해군이 명으로부터 세자 책봉을 거절 당하는 굴욕을 겪은 것과 관련하여 광해군을 더욱 견제하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쟁 중 고생하고 있던 아들이자 세자인 광해군을 선조는 질투했습니다. 자기 자리를 넘본다고 의심하고 미워해 선위파동도 자주 일으켰습니다. 그 중요한 전쟁통에 말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광해군을 폐세자시키고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으나 북대파들의 반대로 이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영창대군을 내쫓아 사사시키고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대북파들의 강경노선을 견지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