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동진 수의사입니다.
보호자님께서 질문하신 "토끼 같은 소동물도 멈춘 심장이 심폐소생술(CPR)로 다시 뛸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드리자면, 현실적으로 확률은 희박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0%는 아니기 때문에 수의사로서 최선을 다해 시도해 본 것입니다.
소동물의 심폐소생술(CPR) 성공 확률이 낮은 이유
토끼, 햄스터, 기니피그 같은 소동물은 강아지나 고양이에 비해서도 심정지 후 다시 심장을 뛰게 하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 너무 작고 취약한 신체 구조: 토끼는 뼈가 매우 약하고 장기가 작아 사람이 손으로 압박을 가할 때 적절한 압력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강해도 장기 손상이 올 수 있고, 약하면 효과가 없습니다.
• 대사율이 매우 빠름: 소동물은 평소 심장박동수가 사람이나 대형 동물보다 훨씬 빠릅니다. 그만큼 심장이 멈췄을 때 뇌와 장기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세포가 괴사하는 속도도 치명적으로 빠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멈춘 지 정말 몇 초 지나지 않은 극초기 상태이거나, 마취 부작용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드물게 CPR을 통해 심장이 다시 뛰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응급실 수의사는 단 1%의 기적이라도 붙잡기 위해 보호자님께 심폐소생술을 제안하고 시도했던 것같습니다.
도착 직후 오줌을 싼 증상의 의미
동물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오줌을 지린 것은, 안타깝게도 그 시점에 생체 기능이 완전히 멈추었음(사망)을 뜻하는 의학적 현상입니다.
동물이 죽음에 이르면 몸을 긴장시키고 있던 모든 근육과 괄약근이 완전히 이완(느슨해짐)됩니다. 이 때문에 방광에 남아있던 소변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즉, 병원 문을 들어설 때 아이는 이미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걷지 못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토끼가 갑자기 잘 걷지 못하다가 급사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 스누플(호흡기 질환) 및 패혈증: 토끼는 아픈 것을 철저히 숨기는 동물입니다. 호흡기 질환이나 체내 감염이 악화되어 패혈증 쇼크가 오면, 마지막 순간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급사하게 됩니다.
• 급성 위정체 (소화기 정체): 장 운동이 멈추면서 가스가 차고 극심한 통증으로 쇼크가 오는 질환입니다. 토끼에게는 가장 무서운 급성 질환 중 하나입니다.
• E. 쿨리 (뇌척수염 기생충): 토끼에게 흔한 기생충으로, 신경계를 침범해 갑자기 뒷다리를 못 쓰거나 고개가 돌아가는 증상을 보이다가 급사하기도 합니다.
"내가 좀 더 일찍 발견했다면 살 수 있었을까?"
"병원에서 굳이 안 되는 심폐소생술을 해서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건 아닐까?"
혹시라도 이런 후회나 자책감으로 괴로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토끼는 야생에서의 습성 때문에 죽기 직전까지 아픈 티를 내지 않다가,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때 갑자기 증상을 드러냅니다. 보호자님이 알아채셨을 때는 이미 아이의 몸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였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