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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도화지113
하얀도화지11323.08.10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 때 사람들은 양치질을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 때 사람들은 양치질을 어떻게 했나요??

따로 치아 관리를 안하고 있는 그대로 살았었나요? 아니면 소금으로라도 했나요?(하지만, 소금은 비싸서 일반 사람들은 쓰지못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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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이쑤시개로 사용해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을 제거했습니다.

    또 치통이 있으면 버드나무 껍질을 다려 입에 넣고 양치 후 뱉어내기도 했으며, 고운 모래, 지푸라기로 치아 표면과 사이 닦기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들이나 부잣 집에서는 소금을 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가격이 비써서 일반 백성들은 옛날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주로 사용해서 양지(楊支)라는 말이 현재 양치(養齒)라는 말로 와전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써본 사람 말에 따르면 굉장히 쓰다고 합니다. . 물론 이런 물건 만들 돈도 없는 사람들은 그냥 아무 나뭇가지나 손가락 등을 이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도 ‘이’를 닦았을까? 닦았다면 어떻게 닦았을까? 지금처럼 ‘칫솔’에 ‘치약’을 묻혀 닦았을까? 의문은 끝이 없다. 분명한 것은 조선 시대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이전 사람들도 이를 닦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은 지금과 달랐다. ‘칫솔’이나 ‘치약’은 서양에서 개화기 이후에 유입된 것이므로, 적어도 그 이전 시기에는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에 지금의 ‘칫솔’이나 ‘치약’에 해당하는 것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옛 문헌에 ‘니 닥imagefont 샤imagefont’, ‘초여집’, ‘양치imagefont’ 등과 같은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예전에도 지금의 ‘칫솔’에 해당하는 기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양칫소금(양치할 때에 쓰는 소금)’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의 ‘치약’을 대신하여 ‘소금’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튜브형 ‘치약’이 일반화되기 바로 전에는 ‘치분(齒紛)’ 또는 ‘치마분(齒磨紛)’이라는 ‘가루로 된 치약’이 쓰이기도 하였다. 예전에 지금의 ‘칫솔’과 같은 기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누구나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지체가 높거나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쓸 수 있는 사치품이 아니었나 한다. 삶이 고달픈 대부분의 백성들은 이 닦는 일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며, 이를 닦는다 하더라도 ‘손가락’이면 족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에는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를 닦는 방법이 보편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를 닦는 모습을 얼마 전까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50·60대 기성세대들은 어린 시절 소금을 손가락에 묻혀서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좌우로 오가는 행위를 반복하며 이를 닦았던 것이다. 가난 때문에 ‘칫솔’ 대신 ‘손가락’을, ‘치약’ 대신 ‘소금’을 이용하여 이를 닦던 것이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이 닦는 방식으로만 보면 조선 시대나 진배없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물론, 예전에는 ‘소금’이 귀하여 이를 닦을 때 늘 ‘소금’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금’이 없는 경우에는 그저 입에 물을 넣고 입속에 있는 음식 찌꺼기를 헹구어내는 데 그쳤다. ‘입안을 헹구는 일’이 소박한 의미의 양치질이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입안을 가시어 내는 일’을 ‘양지’ 또는 ‘양지’에 접미사 ‘-질’을 덧붙여 ‘양지질’이라 하였다. ‘양지’는 한자 ‘楊枝(양지)’로 ‘버드나무 가지’라는 뜻이다. 이 버드나무 가지는 이쑤시개로 안성맞춤이다. 아주 이른 시기에는 잘게 자른 버드나무 가지를 가지고 ‘이’를 청소하였다. 바로 이것이 ‘이 닦기’의 초기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지’는 이미 조선 시대에 ‘입안을 헹구는 일’이라는 의미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17세기 말 이후에는 ‘양치’로 어형까지 변해 나온다. ‘양지’가 ‘양치’로 변하면서, ‘양지질’도 의당 ‘양치질’로 변하였다.

    그럼 ‘양지’가 ‘양치’로 변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楊枝(양지)’에 대한 어원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이’를 지시하는 한자 ‘齒(치)’를 연상하여 그것에 이끌렸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양지’가 ‘양치’로 변하자 19세기 말 이후 사전에서는 그것을 ‘養齒(양치)’로까지 적고 있다. 이로써 ‘양치’를 ‘이’를 양생(養生)하는 한 방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사전에도 ‘양치’에 ‘물로 입속을 씻어내는 것’이라는 의미가 달려 있어 ‘이를 양생함’이라는 의미로 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로 입속을 씻어내는 것’은 조선 시대 ‘양지’가 지니던 의미라서 ‘양지’가 ‘양치’로 어형을 달리했어도 그 의미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개화기 이후 서양의 ‘칫솔’과 ‘치분’, ‘치약’ 등이 들어오면서 ‘양치’나 ‘양치질’의 의미는 달라진다. 단순히 물로 입속을 씻어 내거나, 손가락에 소금을 묻혀 이를 닦는 행위가 아니라 칫솔에 치분이나 치약을 묻혀 이를 닦고 입안을 가시는 행위를 뜻하게 된 것이다. 곧 ‘칫솔질’과 같은 의미가 된 것이다. 물로 입속을 씻어내는 행위에서 칫솔로 이를 닦은 뒤 입안을 가시는 행위로의 의미 변화는 ‘칫솔’이 널리 보급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출처 : 그런, 우리말은 없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돈많은 양반들은 손가락에 소금올려서 했고

    서민들은 지푸라기와 모래로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