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6세기 조선시대 때 어진 제작에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왕의 초상화인 어진은 단순히 초상화인 것이 아니라 조상을 모시는 제의적인 맥락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15, 16세기에 조선시대 어진 제작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강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금님의 얼굴 초상화를 그리기 무척이나 불편했겠지요,
특히 살아 있을 때 얼굴은요,
그래서 화가들이 무척이나 조심스러웠고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건국 초기에 어진은 제의적 용도로 널리 이용됐습니다.
이는 고려왕실에서 불교적 의미에서 해오던 것을 이어온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의 성리학자들이 좋아하지 않았지요.
또한 어진은 화가가 편집하고 생략하는 부분이 많아 왕의 실제 모습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조상이 아니라 우상을 모신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반대하는 여론이 많았답니다.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세기와 16세기에 어진 제작에 부정적 여론이 강했습니다. 어진 제작은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계속되었으며, 단순히 왕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닌 국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러 신하, 화가, 공장이 관여된 국가적 사업이었습니다. 어진제작은 왕의 생전에 실제 얼굴을 보고 그리는 것, 왕의 사후에 근접하게 그리는 것, 어진이 훼손되는 등 문제가 생겨 어진을 보고 다시 그리는 것 세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조서 전기 어진제작에 부정적 여론은 어진이 고려 시대 사찰에 안치되어 불교적 의례에 사용되었다는 거부감이 첫째로 작용하였습니다. 두번째가 핵심적인데, 그림으로 재현하는 과정에 왜곡, 변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태조어진이 100%태조의 모습을 담지 못한다는 비판입니다. 100%의 태조가 아닌데 제의에 쓰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이죠. 이런 맥락에서 어진 제작에 부정적 분위기가 나타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