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8년전인 1584년 사망하였기 때문에 전쟁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는 1538년 경연에서 미래에 닥칠 위험을 대비하여 10만양병설을 주장하며, 이는 임진왜란을 예언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방 개혁, 세금과 부역 개혁, 서얼 및 신분제 개혁 등 주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붕당이 달랐던 유성룡은 당시 병사를 기르는 것은 화를 자초한다고 주장하여 이이의 주장에 반대했습니다. 오히려 임진왜란 이 발발하자 유성룡은 영의정 겸 도제찰사로서 전쟁을 직접 지휘한 핵심 인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천거하여 각각 해전과 육전에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뒷날의 어려움에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징비록'을 집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