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고 하는데 실제로 천리나 되는 장성이 맞나요

삼국 시대에 고구려가 천리장성을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장승이 진짜로 실제거리가 천리를 뜻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길다라는 의미로 천리라고 사용한 것인가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실제로 천리가 되는 장성이라고 합니다.

      626년당나라 태종이 즉위한 뒤부터 당나라와 고구려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세계 제국을 건설하려는 큰 야심을 품고 있던 태종은 본국의 군웅 세력을 완전히 진압하자마자 동돌궐 원정에 착수하는 등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습니다.

      631년(영류왕 14)당나라 사신 장손사가 고구려에 와서,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경관(고구려 때 전사자의 시체를 한 곳에 모아 장사 지내고 그들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합동 분묘 비)을 헐어버린 사건은 고구려의 의구심을 한층 더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장차 당나라의 침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 해부터 장성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북쪽으로는 부여성에서 서남쪽으로는 발해만의 비사성에 이르기까지 1,000리에 걸친 장성으로, 16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어 647년에 완성하였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축성 배경​

      626년당나라 태종이 즉위한 뒤부터 당나라와 고구려의 관계가 점차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세계 제국을 건설하려는 큰 야심을 품고 있던 태종은 본국의 군웅 세력을 완전히 진압하자마자 동돌궐 원정에 착수하는 등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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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1년(영류왕 14)당나라 사신 장손사(長孫師)가 고구려에 와서,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경관(京觀)을 헐어버린 사건은 고구려의 의구심을 한층 더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장차 당나라의 침략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 해부터 장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동북쪽으로는 부여성(扶餘城)에서 서남쪽으로는 발해만의 비사성(卑沙城)에 이르기까지 1,000리에 걸친 장성으로, 16년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어 647년에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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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유사』에는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주청(奏請)으로 천리장성이 축조되었다고 했으나,

      『삼국사기』에는 영류왕의 명으로 연개소문이 642년 1월부터 그 공사를 감독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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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천리장성의 축조는 연개소문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특히 이 공사를 감독하던 연개소문은 642년 10월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으로 들어가 영류왕을 비롯해 자신의 반대파를 대량 학살하고 스스로 대막리지(大莫離支)가 되어 무단 독재 정치를 실시하였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천리장성(千里長城)은 고구려가 당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서쪽 변경(오늘날의 요동 지방)에 쌓은 장성이다. 축조 기간은 631년부터 646년 까지 총 16년이 걸려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거리로는 약 500키로 정도라고 하니 얼추 비슷하게 1000리가 조금 더 되는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사]]에서 두 차례, [[고구려]]와 [[고려시대]]에 등장하는 서로 다른 위치의 [[장성]]. 본래 사서에 기록된 이름은 그냥 장성(長城)일 뿐이고, '천리장성'이라는 이름은 오늘날에 사학자들이 '천리가 되었다.'는 기록에 따라 임의로 붙인 이름이나, '천리장성'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만리장성이라는 이름도 똑같다. 이름은 따로 없고 그냥 '장성'이지만, 후에 '만리'장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본고장 중국인들은 아직도 장성이라고 부르며, 그래서 영어명이 'The Great Wall'인 것이다.] 길이를 따져보면 고구려 천리장성은 천 리보다 훨씬 길다. 고려가 쌓은 장성은 길이가 천 리와 비슷하다.사실 '리'라는 단위가 시대와 나라별로 차이가 조금씩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