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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재규어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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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스칸 이후의 몽골은 어떻게 무너졌나요?

안녕하세요? 징기스칸 때 유럽까지 토지를 확장하는 황금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땅이 많이 줄었더라구요~ 찬란했던 시절의 몽골과 다르게 요즘은 많이 작아진것은 몽골이 어떻게 무너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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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열대 지방에까지 진출했던 몽골 제국이 분열 이후 열대와 온대 농경 지대를 상실하고 급속도로 유목민족 중심의 초원 지대로 밀어올려진 건 근본적으로 몽골 제국의 지배 체제 자체에 약점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몽골 제국이 오랜 기간 지속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몽골의 자체적 문화적 역량의 부족과 경제적 역량의 부족이었다고 봐도 되는데, 유목민족 특유의 적은 인구가 저 두 요소를 야기함과 동시에 심화하여 몽골 제국의 존속 가능성에 심각한 악영향을 줬습니다.

    칭기즈 칸이 정복 활동을 시작하던 무렵의 몽골 인구가 80만 내외로 추정되는데, 이는 1억 3600만에 달하던 중국(금+남송)은 물론, 350만~450만 정도로 추정되는 고려, 450만~800만 사이로 추정되는 키예프 루스에 비해서도 훨씬 적은 인구였다. 즉, 고려의 1/3도 안 되는 인구로 그 넓은 영토와 엄청난 피지배 인구를 거느린 대제국을 유지해야 했던 것입니다. 물론 몽골의 침공으로 중국, 고려, 루스, 페르시아, 아랍 등의 인구가 크게 줄었고, 몽골인은 통일과 피지배 민족에 대한 착취로 어느 정도 늘기는 했으나, 여전히 인구에서 몽골인은 피지배 민족들에 비해 절대적 열세였습니다.

    몽골 제국은 엄청난 판도를 자랑했지만 내전을 치르면서 각 지역별로 분열하게 되었고, 초원에서 가축을 치던 유목민이 인구의 대부분이었던 몽골인들에게는 중국인, 고려인, 아랍인, 투르크인, 쿠르드인, 페르시아인, 슬라브인 등 훨씬 높은 문화적 수준을 지닌 피지배 정주 민족들을 동화시킬 수 있는 어떠한 문화적 역량도 없었다. 인구가 많다면 혼혈 정책을 펼쳐 억지로 밀고 들어가 혈통 의식이라도 심을 수 있었겠지만, 인구에서도 피지배 민족들에게 압도적으로 밀려 혼혈 정책을 펼치기도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적은 인구와 낮은 문화적 소양 때문에 몽골인들이 기존 농경 정주 민족을 다스리던 유목민 왕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지배 민족들에게 동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원이나 여타 다른 몽골계 국가들에서 피지배 민족에 동화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동시에 피지배 민족들을 몽골에 동화시키려 했으나 결국 이들을 동화시키지 못하고 결국 피지배 민족들의 반란으로 점점 쫓겨나며 쇠락하였다. 오히려 몽골로 돌아가지 못한/않은 몽골인들은 높은 문화적 역량과 많은 인구를 지니고 있던 중국, 한국, 튀르키예, 아랍, 이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 동화되었습니다.

    그나마 티무르나 무굴의 경우를 봤을 때 몽골 제국의 지배층과 통혼하던 중앙아시아 및 그 주변 지역의 유목민족계 지배층들 중 일부에게는 18세기 무렵까지 몽골인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도 하나, 이들의 몽골 계승 주장은 사실상 통치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이들을 실질적으로 규정하는 문화적/혈연적 정체성은 아니라는 주장도 존재합니다. 그나마도 18세기 이후 각지의 민족 의식 혹은 국가 의식이 강화되며 사라지거나 영국,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으며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때문에 몽골 제국은 그 넓은 영토를 지배하고 각지에 몽골인들을 보내 살게했지만 대부분 소규모 지배층 및 중간 계층에 불과했고, 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하던 제국의 지배력이 사라지고 자신들이 피지배 민족이 되자 너무나도 쉽게 지배자가 된 압도적 다수의 피지배민들에게 혈연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 둘 다에서 동화되어 버렸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몽골인의 후손으로서 자각과 정체성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결국 몽골 제국의 본토이자 칭키즈칸 이전 시대 몽골의 영역인 외몽골과 내몽골 출신의 몽골인들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해서 몽골 제국은 자체적 인구와 경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지배민들에게 다양한 세금을 엄청나게 높은 세율로 징수했는데, 복속 이전보다 훨씬 높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던 피지배 민족들의 반발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몽골 제국이 피지배 민족들의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엄청난 세금을 물렸던 이유가 있는데, 농업이 가장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던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몽골인들의 본거지인 몽골 지역의 토지 중 대부분은 농경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몽골의 자체적 경제 역량으로는 대제국을 경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거기다 이런 자연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몽골은 자체적으로 국가 경제를 경영하며 국력을 유지할 수준의 인구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몽골은 빠른 기동력과 기마궁병의 전술적 우위를 이용하여 정주 농경민들의 국가들을 정복한 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 역량을 피지배 민족들에게 의지하는 사실상 약탈 경제 혹은 기생 경제 체제를 구성했다. 더 나아가 정복지의 치안 유지 능력은 물론 군사력조차도[58] 사실상 이렇게 정복하여 지배한 정주 농경민 피지배 민족들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 때문에 몽골 제국은 대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자금을 이들 피지배 민족들에게서 세금 및 조공으로 받아내거나 약탈해온 물자들과 농경 민족들 간 교역을 독점하며 챙긴 마진 이익으로 충당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정주 민족들이 몽골식 기마궁병에 익숙해지면서 대응 전략을 세우게 되면서 칭기즈 칸 이래의 몽골의 전술이 파훼되고, 더이상 몽골식 기마궁병이 전술적 우위를 지니지 못하게 되어 정주 민족들을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할 수 없게 되자 몽골 제국과 반기를 든 피지배 민족 간의 전쟁은 지구전 겸 소모전이 되었다. 자체적인 인구와 경제력이 부족한 데다 각지의 반란 및 외침과 내분이 겹친 탓에 피지배 민족에 대한 동원 능력마저 떨어져 이런 식의 전쟁에 대한 지속 능력이 부족했던 몽골인들은 자신들에게 반기를 든 피지배 민족을 차래로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피지배 민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하나 둘 상실하기 시작하자 몽골 제국의 경제 붕괴에 더욱더 속도가 붙어 빠르게 제국이 무너지게 됐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몽골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