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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6.19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최초의 화폐는 무엇인가요?

지금은 아주 흔하게 사용되는 화폐이지만 옛날에도 이렇게 화폐가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최초의 우리나라 화폐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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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19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는 상평통보입니다.

    상평통보는 조선시대의 화페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633년(인조 11) 김신국·김육 등의 건의에 따라 상평청을 설치하고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나빠 유통을 중지하였습니다.

    그후 1678년(숙종 4) 정월에 다시 영의정 허적, 좌의정 권대운 등의 주장에 따라 상평통보를 다시 주조하여 서울과 서북 일부에 유통하게 하였다. 그 뒤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 유통하게 했는데, 조선 말기에 현대식 화폐가 나올 때까지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화폐는 자모전으로 기원전 957년 기자조선 흥평왕때 사용되었다고 동국사략, 해동역사에 기록되어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대에 만들어진 '건원중보(철전)'입니다.

    해동통보는 훨씬 뒤인 15대 숙종대에 문벌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화폐정책을 펼쳤을 때 주조된 동전입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고려 성종 때 철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록으로만 전해지고 그 실물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화페는 고려 성종 때 건원중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화폐 기능을 수행하지 못 했고 물물교환 형태로만 사용됐습니다. 그 이전까지의 화폐는 화폐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지만, 조선시대 숙종 때 화폐인 상평통보부터 제대로 유통이 되어 화폐 기능으로서 작동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선사시대의 교환수단이 어떠한 것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자급자족적 경제생활단계를 지나서 물물교환이 지배적이었고, 무기와 각종 생산기구 · 장신구 · 가축 · 곡물류 등이 물품화폐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철을 생산하여 교환수단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변한에서는 철을 생산하여 일본까지 수출하였고, 중국의 전화(錢貨)주1처럼 철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동옥저에서는 금 · 은으로 만든 무문전(無文錢)주2, 즉 문양이 없는 금은전(金銀錢)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시대에는 농업생산력이 증진되고 야금술을 비롯한 수공업기술의 수준이 향상되었음은 물론, 상업도 발달했다. 따라서, 삼국시대에는 쌀 · 조 · 보리 등의 곡물류와 베[布] · 모시 · 비단 등의 견직물 · 마직물이 국가에 대한 세납(稅納)과 지출수단으로 사용되는 동시에 일반 유통계에서는 물품화폐로서 통용되었다. 또한, 금 · 은과 같은 귀금속과 철 등이 일종의 칭량화폐(稱量貨幣)주3로서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 · 은 세공기술 등을 비롯한 수공업기술 전반이 비교적 발달한 신라에서는 금 · 은 무문전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구체적 내용이 없어 그것의 주조(鑄造) 내지 유통실태 등에 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한편, 이상의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의 유통이 지배하던 시기에 일찍이 화폐경제가 발달한 중국으로부터 중국 각 시대의 여러 종류의 화폐가 한반도로 흘러들어왔다.


    이와 같은 사실은 중국 고대 화폐로서 명도전(明刀錢)과 포전(布錢)주4은 물론 한사군시대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한(漢)나라 화폐인 오수전(五銖錢)주5, 왕망시대(王莽時代)의 화폐 등이 한반도의 각 지방에서 출토된 사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과의 제반 문물교류가 활발해지고, 문물교섭과정에서 당나라의 개원통보(開元通寶)주6 등 중국화폐가 다량 유입된 사실을 기록이나 출토된 화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화폐가 일부 계층이나 극히 한정된 유통계에서 사용된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국가가 정책적으로 화폐유통을 시도할 만큼 큰 영향은 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삼한시대에 교환수단으로 사용한 철이나 동옥저와 신라에서 사용한 금 · 은 무문전 등은 사실은 국가가 정책적으로 그 품질 · 체재 및 무게를 규격화해서 만들어 사용한 화폐였다기보다는,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유통이 지배적인 원시자연경제체제에서 통용된 자연발생적 교환수단, 즉 실용성을 전제로 한 물품화폐와 본질적으로 성격을 같이하는 칭량화폐였다 할 것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