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이 3차에 걸쳐 전개된 이유는 개혁 과정에서 정치적 변화에 기인한 것입니다. 1894년 6월 1차 개혁은 일본의 강요에서 의해 설치된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전개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조선 정부에 대한 간섭을 하지 못하였으며, 실제로 조선의 개화관료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러나 1895년 11월 전쟁이 유리해지자 일본은 박영효를 내무대산으로 세워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했습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간섭을 노골화하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주도한 삼국간섭으로 1895년 친러내각이 구성되자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유길준 등 친일내각을 구성하여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