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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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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제천행사 풍습은 어땠나요?

안녕하세요.


고구려의 제천행사의 풍습은 어떠했나요?


제천행사를 주로 몇월에 실시했는지


그리고 제천행사에 대한 명칭은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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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에서는 음력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가 열렸고, 삼한에서는 곡식의 씨를 뿌리고 난 후인 5월과 가을걷이가 끝난 10월에 각각 제천 행사를 열었다.

    고대의 제천 행사는 모두 온 국민이 참여하는 나라 전체의 축제로 치러졌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고 나와 먹고 마시며 즐겼고, 임금은 반역의 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라면 자비를 베풀어 죄수들을 풀어 주었다. 고대 국가들은 제천 행사를 통해 풍년을 기원하고 온 국민이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이다.

    심화

    [네이버 지식백과] 제천 행사 - 하늘을 숭배하고 풍년을 빌며 지내는 제사 (한국사 사전 2 - 역사 사건·문화와 사상,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이승수)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에서 매년 10월(상달)에 지내던 제천의식입니다.

    부여는 영고

    東盟

    동쪽 (부족들의) 연맹이란 뜻일 것 같네요.

    고구려가 여러부족으로 연합된 국가이기에, 해마다 모여서 충성과 결속을 다질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이부분을 언급하는 백과사전이 없길래.....

    여기서 동쪽의 국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른 지역 즉 동쪽의 국가들과 충성과 결속을 다질 필요가 있다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 고구려의 제천행사는 중요한 유교 의식 중 하나인 제사를 지칭합니다. 고구려 제천행사는 주로 매년 가을에 실시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고구려의 왕과 신하들이 제사를 지내고 조상들에게 예를 드리는 의식이었습니다.

    고구려 제천행사는 "제사"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이는 고구려 사회에서 중요한 종교적 의식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제사당에 모여 신석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왕과 신하들은 예복을 차려 입고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는 음악과 무예, 무용 등의 예술 공연이 열렸으며, 왕과 신하들은 음식과 음주를 함께 하면서 조상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고구려 제천행사는 고구려의 종교와 문화,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행사로서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고구려 사회에서는 조상 숭배와 왕권의 신성화가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명(東明)’이라고도 합니다. 동맹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등에 처음 나타납니다. 『후한서』에서는 “10월로써 하늘에 제사하고 대회하니 이름하여 동맹이라 합니다. 그 나라 동쪽에 대혈이 있는데 수신이라 부르고, 역시 10월로써 맞아서 제사한다(以十月祭天大會 名曰東盟 其國東有大穴 號隧神 亦以十月迎而祭之).”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위지」 동이전(東夷傳) 고구려전도 대략 같은 내용의 기록이나 다만 “수신을 맞아서 나라 동쪽 높은 곳에 모시고 제사할 때 목수를 신좌에 모셨다(迎隧神 還於國東上祭之 置木隧於神坐).”라고 약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수(隧)는 굴 · 구멍 · 대혈신(大穴神) 등의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목수(木隧)는 목각(木刻)의 굴신상(窟神像)이라는 뜻이 됩니다.


    한편, 『주서(周書)』(7세기)나 『북사(北史)』(7세기)의 고구려전에도 “또 신묘 두 곳이 있으니, 하나는 부여신이라 하며 나무로 깎은 부인의 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등고신이라 부르니 이는 그 시조인 부여신의 아들이라 합니다. 같이 벼슬을 두고, 사람을 보내서 수호하는데 아마도 하백녀와 주몽을 말하는 것이리라(又有神廟二所 一曰夫餘神 刻木作婦人之象 一曰登高神 云是其始祖 夫餘神之子 竝置官司 遣人守護 蓋河伯女 與朱蒙云).”라고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지』 동이전 한전(韓傳)에도 “5월에 씨 뿌리기를 마치고 난 뒤와, 10월에 농사를 마치고 나서도 귀신을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들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동맹의 10월 제천은 농경의례로서 부족사회 공동체의 추수감사제였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굴을 성소(聖所)로 삼고 여신상을 모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도 아울러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동맹은 고려의 팔관회(八關會)로 계승되었음을 『송사(宋史)』(1345)의 “나라 동쪽에 굴이 있고 세신이라 부릅니다. 늘 시월 보름에 맞아서 제사하는데 이것을 팔관재라 합니다. 그 의례가 매우 성대하여 왕과 비빈이 다락에 오르고 크게 풍악과 연음을 베풀었다(國東有穴 號歲神 常以十月望日迎祭 謂之八關齋 禮儀甚盛 王與妃嬪登樓大張樂宴飮).”라는 기록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고구려의 종교 의식(추수감사제)이자 제천 행사이며 원시 종합 예술인 매년 10월에 열리던 명절로 하늘에 제사지내고 또 여러 사람이 가무를 즐겼다 하며, 이를 동맹(東盟) 또는 동명(東明)이라고도 한다.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