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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16

일제시대 광복군이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사실인가요

1944년 광복군이 동남아 미얀마 전선에 투입됐다는 황당한 이야기를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것은 근거 있는 사실인가요 믿기가 힘들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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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광복군이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국과 나란히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는 공식 기록이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영국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한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관련 자료를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발굴했다고 12일 밝혔다.

    인면(印緬)은 인도와 미얀마를 뜻한다. 이 공작대는 한국광복군 소속 부대로 1943년 8월∼1945년 7월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과 공동 작전을 펼쳐 직접 대일항전을 펼친 유일한 부대다.

    영국국립문서보관소가 소장한 인면전구공작대 자료는 보고서 등 8종 총 400여 쪽 분량으로 공작대의 선전 활동, 공작대 부(副)대장 문응국 지사의 활약, 영국 측의 평가 등을 담았다.

    인면전구공작대는 영국특수작전집행부(SOE) 산하의 인도전구선전대(IFBU)에 소속돼 활동한 것으로 기록됐다.

    영국군 보고서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한국광복군 부대와 SOE에 의해 발견된 버마어와 인도어를 할 수 있는 14명이 배치됐다", "제17사단장은 이 부대에 배치된 한국인 장교인 문응국이 했던 가치 있는 작전수행을 칭송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일본군이 점령한 미얀마 접경지역인 임팔에서 전개된 영국군의 작전인 임팔전투에서 문응국 지사가 보인 활약상을 영국 측이 인정한 것이라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또 "IFBU의 방송 프로그램은 부대 사령관과 협의로 훈련된 한국인 선전 요원에 의해 마련되고, 지금 일본에서는 금지된 감성적인 종류의 일본 레코드들을 내보낸다"며 공작대원들의 대일 선전 활동을 설명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김희곤 관장은 "영국군의 공식기록으로 인면전구공작대의 활약상을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국·영국의 공동항전과 연합작전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수집한 자료 전체에 대한 번역과 분석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한·영 수교 140주년이 되는 내년에 자료집 편찬과 한·영 국제학술회의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독립운동이 독립 쟁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반제국주의를 향한 연대와 공동 투쟁의 역사로 이어졌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복군은 당시 일본과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중·영·미 등의 연합군들과 그 절차나 형태는 각기 달랐지만, 일정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활동하였다. 중국군과는 창설 당시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광복군 창설 자체가 중국측의 양해와 협조하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광복군은 중국 군사위원회에 사실상 예속되어 중국군과 함께 활동한 것이다.


    영국군과도 함께 대일전쟁을 전개하였다. 인도·버마(미얀마)전선에 광복군 공작대원들을 파견하여 영국군과 함께 대일전쟁을 수행한 것이 그것이다. 인도·버마지역에서는 영국군과 일본군이 대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버마는 연합군이 중국에 전쟁물자를 수송하는 주요 통로였는데, 일본군이 이를 점령함으로써 수송로가 차단되었다.947) 영국군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임무를 맡아 인도·버마지역에서 일본군과 전쟁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군과의 공동작전은 영국군측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졌다.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영국군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인원이 필요하였고, 이를 광복군측에 요청하였다. 광복군에서는 韓志成·文應國 등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공작대원 9명을 선발, 1943년 8월 인도 캘커타(Calcutta)로 파견하였다.948) 이를 계기로 광복군은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전선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광복군 공작대원들은 인도주둔 영국군 총사령부에서 교육을 받은 후, 전선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4개월 동안 영어와 방송기술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1944년 초 영국군에 분산 배속되어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군은 임팔(Imphal)전선에서 일본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띠마플·티딤·비센플 등 각지에서도 계속 전투가 이어졌다. 광복군 공작대원들은 영국과 함께 이러한 전투에 참여하였고, 영국군이 하기 어려운 대적방송·포로심문·적문서번역 등 주로 정보활동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활동은 1945년 초 버마에 대한 총반격작전을 비롯하여, 버마 수도인 랑군(Rangoon, 양곤)을 완전히 탈환하여 일본군을 패퇴시키는 1945년 7월까지 계속되었다. 2년여에 걸쳐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전선에서 대일전쟁을 전개한 것이다.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한국광복군이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서 일본군에 맞서 작전을 수행했다는 영국군 공식 자료가 발굴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