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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명절 차례상은 원래 음식이 작게 올라 갔다고 하던데..

원래 명절 차례상은 지금 처럼 많은 음식이 올라 가지 않았고 간소화된 차례상이였다고 하더라구요 ?? 그럼 어느 시대 때부터 차례상에 음식이 많이 올라 간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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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라는 것은 없습니다.

      기제사의 제사상이든, 명절의 차례상이든 집안마다 그 특색이 다릅니다.

      제사상이든 차례상이든 과거가 지금보다 훨씬 거하게 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떡이든, 전이든, 다과든 접시에 쓰러질 정도로 높이 쌓아 올렸지요. 지금도 그것이 전통이라며 유지하는 곳도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에도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이유는 다들 자신의 삶에 얽매여 살다가 기제사나 명절에 일가친척이 다같이 모여 식사를 하다보니 그 양이 더 많아졌다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과거 너무 과도한 허례허식을 지적하며, 국가에서도 캠페인으로 차례상 간소화 등을 추진하였었습니다.

      지금은 제사나 명절의 풍속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제사상, 차례상이 아닌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 등을 올린다던지, 딱 한 두 끼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적게 차린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결혼 후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10년 넘게 제사와 차례를 지내온 저희 집에서도 갈수록 음식의 양을 줄여가고 있습니다. 간혹 조상에 대한 마음이 강해서 더욱 푸짐하게 차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아닌 듯 합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고 각자의 집안 사정에 맞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간소했던 차례 음식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점차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선조들은 매년 조상들이 돌아가신 날 저녁에 기제사 (忌祭祀)를, 음력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의 낮에 차례 (茶禮)를 지내 왔습니다. 차례는 말 그대로 조상님께 차 (茶)를 올리는 예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집안에 사당이 없어지고 제사도 점점 간단하게 치뤄 지면서 점점 더 음식이 많아 지고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남은 음식으로 친지와 가족들까지 식사를 하게 되면서 찰 상도 음식이 많아 진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차례상에 뭐가 많이 올라가기 시 작한것은 세종대왕 시기로 추정됩니다 풍년이 계속 되고 전쟁도 없고 풍족하게 잘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분제 철폐 후 오히려 제사상이 화려해졌는데

      상당히 관련이 많다. 과거엔 서민과 양반이 지내는 제사 횟수부터가 달랐다. 3품관 이상은 고조부까지 4대 봉사를 지내고, 6품관 이상은 증조부까지 3대 봉사, 7품관 이하 선비들은 조부모까지 2대 봉사를 하고, 서민들은 부모만 제사를 지냈다(조선조 경국대전).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고 반상이 무너지면서, 모두가 너도나도 높은 양반처럼 4대 봉사를 하는 현상이 생겨났다. 무리해서라도 일반 서민들이 양반식 차례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부담이 컸는데도 그랬다. 그런 정서가 이제까지 계속 내려오다 보니까 문제가 많이 됐지 않았나

      합니다.

      -출처: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