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하천, 수로 정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태종은 개천도감을 두어 청계천 바닥을 파내고, 양안에 석축 제방을 쌓고 돌다를 놓았습니다. 그리고 세종 때도 지천 정비와 수표를 설치했습니다. 영조 때는 청계천 인근 논밭을 매수해 나무를 심고, 해마다 보수하는 등 치우에 힘썼습니다.
하지만 청계천은 상류 토사 유출로 퇴적이 빨라 정기 준설을 해야 했으며, 제 때 깊이 파내지 않으면 범람하기 일쑤였습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오물처리는 거름 장수와 인근 농민의 활용으로 처리되었습니다. 하지만 장마철에는 오물이 하천으로 쓸려들어 수질 오염과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당시 상하도수 개념이 없어 배수로 상하수도 건설이 불가능하고, 개방형 배수로와 오물 배출로 쓰는 구조가 고작이었습니다. 따라서 장마철 오물이 쉽게 유입되어 오염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