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2차대전 중에 프랑스는 불과 한 달만에 나찌에 점령당하고 마는데 이때 나찌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전쟁 이후 어떻게 됐나요?
프랑스는 2차대전에서 독일의 공격에 한달 여 만에 수도 파리까지 내주게 되는데 이 때 프랑스 정부는 끝까지 싸우자는 쪽과 대세를 거스릴 수 없으니 나찌에 협력할 수 밖에 없다는 파로 나뉘었을 거구요.
전쟁이 끝나고 난 후 나찌에 협력했던 부역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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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중 나치 협력자 중 일부는 독일 점령기 생존을 위한 차선책이라 주장했으나 이는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이를 민족 반역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944년 약 35만명이 조사되었으며, 12만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약 9만 8천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주요 인물은 사형에 처하거나 공민권 박탈, 공직 추방 등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민경 전문가입니다.
프랑사는 나치에 협조한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1964년 6월 26일 드골이
전국에 협력자 재판소를 만듭니다.
또한 이전인 대독항쟁기간이나 해방기간에서도 레지스탕스들이 약식으로 재판을 진행하여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