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령전투는 어떠한 전투였는지요.
조선시대 막강한 화력전이 동원되어 승리로 이끈 만령전투는 어떠한 전투였는지요.
아시는분은 질문에 답변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함길도 만령전투가 무엇인지 궁금한 것 같습니다.
1467년 7월 31일경, 만령전투는 반란 진압의 승부령이었습니다. 초반 지세를 장악한 반군은 5만의 관군을 상대로 비등한 전투력을 과시했습니다. 승기가 반군 쪽으로 기울던 차에 등장한 관군의 화차는 전세를 역전시켰습니다. 아마 요즘으로 치면, 전차부대의 등장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만령전투 당시 반군의 주력이었던 익속군은 다음의 세 가지에서 관군을 압도했습니다.
-지형을 잘 파악하고 있던 반군은 만령을 장악하고 관군의 공격에 대비했습니다.
-그들은 화약 병기 사용에 있어 실전에서 익힌 숙련도를 자랑했습니다. 피아간에 같은 무기로 싸운다고 하더라도, 실전에서 적용했던 실전부대의 그것을 관군이 능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전투에 패하긴 했지만, 익속군은 후위전에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일사분란하게 부상당한 병사들을 후송시켰고, 남은 병장기들도 관군이 사용하지 못하게 폐기했습니다. 공격보다 더 어려운 것이 일찍이 후위전이 아니었던가. 방어전에서도 세 겹의 방패부대로 관군의 화약 병기 공격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세조때 이시애의 난에서 이시애의 반란군과 관군 사이에서 벌어진 1467년의 '만령전투'라는 것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조 때 이시애의 난에서 이시애의 반란군과 관군 사이에서 벌어진 1647년의 ‘만령전투’라는 것이 있는데 만령전투 당시 반군의 주력이었던 익속군은 처음엔 관군을 압도했습니다. 1467년 5월, 길주에서 시작된 반란은 강원도 철원까지 진출하며 기세를 올렸다고 하는데 승기가 반군 쪽으로 기울던 차에 관군은 화차를 등장시켜 단번에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결국 이시애는 반란 3달 만에 관군에게 체포되어 8월 12일 효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