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칠정산’이라는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나요?
조선시대에 천문관측 기구들을 이용해 ‘칠정산’이라는 달력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하던데요. 어떤 계산 방식 등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와 사대(事大)관계를 맺고 천자가 만든 역서를 받아서 사용하였습니다. 찬피한 일이 지만 우리나라는 매년 다음해 달력을 중국에서 받아 사용했다고 합니다. 매년 가을에 연경(북경)에 보냈던 동지사(冬至使)는 바로 다음해의 역서를 받아오기 위해 보낸 사신이었는데요. 세종시대 들어오면서, 왕조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우리 임금이 만든 역서에 따라 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 역법개정에 착수하였습니다. 한양의 일출 ‧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우리 풍토에 맞는 역법을 개발하여 최초의 본국력(本國曆)이라 부르는 [칠정산]을 제작하여 명나라 [대통력]과 함께 사용하였습니다. [칠정산]은 글자 그대로 해와 달, 수성, 금성, 목성, 토성(이를 칠요七曜라고도 한다)의 운행을 계산하는 ‘일곱 천체의 운행 계산법’인데요. ‘ 사실상 [대통력]대신 [수시력]을 교정하여 천체운동을 나타내는 역을 계산하고 한양을 기준으로 상수들을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시(地方時)는 한양을 기준으로 일출 ‧ 일몰 시각과 주야시간을 계산하여 정해졌다고 합니다. 우리의 과학기술로 직접 역법을 교정(校正)했다는 사실은 조선이 전세계에서 지방시를 시행한 몇몇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매우 큰 의의를 갖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