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대 국왕인 정종의 아들은 왕비 소생은 없고, 대부분 후궁 소생으로 17남, 8녀의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덕천군 이후생은 정종의 10남으로 후손이 가장 많이 번성했습니다. 왕자였으나 사치를 멀리하고, 검약했으며, 봉록을 가난한 친천과 이웃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농사를 좋아해 공주 일대에 전장을 두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꾸는 등 소박한 생활을 했다고 하니다. 어느 해는 금강의 홍수로 수백호가 침수되었는데, 자신이 심은 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이재민을 구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덕을 쌓은 어른이라고 '적덕공'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종은 재위 기간도 짧고 왕자의 난 이후 실권은 동생 방원에게 있었습니다. 따라서 1400년 2차 왕자의 난이 진압된 이후 정종은 상왕 태조의 허락을 받아 이방원을 왕세자로 책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