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이 처음 형성될 당시는 공론 정치의 수단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즉 왕의 일방적 명령이 아닌 여론과 토론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취지에서 성립된 것입니다.
하지만 분당 과정에서 정파적 차이 이외에도 성리학의 해석과 통치 철학에 따른 학파적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특히 동인를 구성한 영남학파는 이황의 주리론, 서인은 이이의 주기론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따라서 동인은 수기에 무게를 두었다면, 서인은 치인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이후 현종 때 예송 논쟁에서 왕권과 신권의 비중을 놓고 서인과 남인이 대립했으며, 대외적으로 북벌론과 실리를 놓고도 댈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