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부마는 왜 벼슬을 할 수 없었나요?
조선시대에 공주나 옹주와 결혼하면 출세가 보장된것이 아니고 오히려 관직에 진출할수 없었다고 하던데 무엇때문에 관직에 얻을 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마는 엄밀하게는 천자의 딸과 결혼한 남자를 말한다. 즉, 공주/옹주의 남편이자 임금의 사위를 말한다.
부마는 봉건 제도 하에서 봉건의 하위 계층으로, 노비나 자유 농민 출신의 군인 등이 이 계급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양반 계급과는 권한과 지위에서 차이가 있었으며, 관직에 오르는 것은 어려웠다고 합니다.
'부마도위'는 천자의 행차 때 갑작스런 암살의 위협을 막기 위해서 어느 마차에 천자가 탔는지 모르도록 동행하는 예비 마차인 '부거'를 끄는 말인 '부마'를 관리하던 직책이다. 현대 사회의 직책과 비교하자면, '대통령 경호실 2호차 관리 및 선탑자'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이라곤 그냥 아랫사람 시켜서 왕이 타는 마차를 관리하다가 황제의 행차가 있으면 선탑하는게 주요 임무인, 놀고먹기 딱 좋은 고대의 땡보직 중의 땡보직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직책인 것이, "행차 때 황제가 몇번째 마차에 타고 있는가?" 라는 초특급 기밀을 관장했기 때문입니다.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부마란 왕의 사위를 일컫는 말로, 조선시대 정식 명칭은 ‘의빈(儀賓)’입니다. 부마가 된 이는 공주나 옹주와 혼인함에 따라 왕실 인사로서 국왕의 최측근이 될 수 있었으나 정작 정치에는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경국대전>에 부마의 정치 참여를 제한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마로 간택된 이는 정2품, 2품의 품계로 신분은 높지만 과거에 응시할 수 없고 벼슬길에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비, 후궁, 종친에 못지않게 부마와 그 가문은 왕실 인척으로서 정치·문화사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부마는 왕실 문화를 주도하기도 했으며, 부마 가문은 정치 실세로서 왕의 자문, 후견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실 재산등을 탐낼수 있고 안좋은 영향을 줄수도 있고 사병 악용등 범죄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