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핫뉴스실시간 인기검색어
아핫뉴스 화산 이미지
아하

학문

역사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

데우라치 암살미수사건에서 개신교인을 지목한 이유가 뭔가요?

데우라치 암살미수사건에서 굳이 평안도 주재 개신교인들을 지목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어떠한 이유에서 평안도 주재의 개신교인들을 지명한것인가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많은 피의자 가운데 한 두 사람만을 제외한 기소자 거의 전원이 ‘총독을 암살하려 하였다’는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상과 같은 잔혹한 고문 때문이었습다. 말하자면 일제가 짜놓은 각본에 따라 심문관이 일방적으로 사건내용을 열거하고 이에 대해 피의자들이 ‘아니오’, 혹은 ‘모른다’고 부인하면 ‘예’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무자비한 고문을 계속해 결국 허위자백을 받아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우훈 등 끝까지 시인하기를 거부한 사람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끝까지 견디어 낼 수 있었던 힘은 신앙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참을 수 없는 고문이 가해질 때마다 “생을 저주하고 탄식하고 이를 갈면서 만난의 고통을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으로 극복했던 ‘욥’(성경(구약)에 나오는 인물)과 스데반의 순교(신약에 나오는 인물)를 생각하며 “나는 내 갈 길이 있으니 십자가의 용사가 되어 불의와 싸울 뿐이다. 죽고 사는 것이 내게는 벌써 문제가 안 된다”는 굳은 믿음과 의지를 갖고 버텨냈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은 피의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피의자들의 가족들도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이겨내야 했습니다. 특히 가장을 잃은 가정에서는 생활고로 집을 팔아야 했고 따라서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피의자 가족들이 흩어지기도 하고 함께 집단생활을 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 사건을 계기로 안명근이 신민회(新民會) 회원임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1911년 1월 전국 경찰에 명해 윤치호·양기탁·이승훈·유동열(柳東說)·김구(金九)·김홍량(金鴻亮)·최명식(崔明植)·도인권(都寅權)·안태국(安泰國) 등 신민회 민족지도자 600인을 검거하였습니다.

      당시 신민회의 지방조직은 평안북도와 평안남도 조직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평안남도의 조직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최광옥-안태국(安泰國)-장응진(張膺震)으로 이어지는, 교육사업에 종사하던 인맥에 의해 결성되었다고 하며 그 구성원은 신민회의 표면단체인 청년학우회, 동제회(同濟會) 등의 회원이 중심이었다고 합니다. . 반면 평안북도의 조직은 분회까지 갖추었으며 평안남도의 조직에 비해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평안도 지역이 그 타겟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