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청나라에 표면적으로 사대관계를 수용하면서도 명나라 중심의 중화 질서를 유지하려 하였습니다. 따라서 명나라 이후 조선은 청의 종주권을 인정하며서도 내부적으로 소중화 사상을 강화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벌론이 대두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지배층의 자제들을 중심으로 청을 왕래하면서 청의 발달된 문물을 수요하자는 북학운동이 대두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들은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이 그렇습니다. 19세기 개항 이후 임오군란 이후 청은 내정간섭을 강화하였으며, 이는 청일 전쟁을 유발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