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쟁에서 민간인이 학살된 사례도 있나요?
30년 전쟁은 독일 안에서 일어난 구교와 신교의 전쟁으로 알고있는데
같은 자국민이더라도 믿는 종교가 가톨릭인지 개신교인지에 따라 갈등이 일어나 군인이나 정치가가 아닌 민간인이 싸움에 휘말려 학살이나 죽임을 당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30년 전쟁에서도 민간인이 학살된 사례가 학계에 많이 보고 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3차 스웨젠 전쟁 에서 개신교파 도시였던 마그데부르크에서 황제군 용병들의 대학살극이 벌어져 마그데부르크 시민 20,000명 이상이 학살당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마 교황청의 착취에 고통 받던 독일 농민들과 독일을 통치하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게 불만이 많았던 독일의 일부 제후들은 루터를 열렬히 지지했어요. 이후 루터를 지지하는 신교파와 로마 교황청을 지지하는 구교파는 대립을 거듭하다가, 결국 전쟁을 하게 되었어요.
독일 전역이 동요하게 되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제국 회의를 소집하여 '제후의 신앙에 따라 제후가 다스리는 지역의 신앙이 결정된다.'고 선언했어요. 이로써 루터파의 자유가 허용되었지요.
17세기 초, 신교와 구교 간의 갈등이 다시 깊어졌어요. 신성 로마 제국과 교황이 신교를 믿는 도시를 강제로 가톨릭을 믿는 제후의 통치 지역으로 편입시켜 버렸기 때문이에요. 여기에 저항하여 신교를 믿는 팔츠의 선제후를 중심으로 신교파 연합이 구성되었어요. 그러자 구교 제후들도 바이에른을 중심으로 가톨릭 연맹을 결성했지요.
그런데 1618년, 30년 전쟁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어요. 구교를 믿는 보헤미아의 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가 신교의 종교 자유를 보장했던 칙령을 취소해 버린 거예요. 그러자 보헤미아 의회는 그를 왕의 자리에서 내리고, 팔츠의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5세를 왕으로 세웠지요. 이것을 계기로 30년 전쟁이 시작되었어요.
30년 전쟁은 독일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비극적인 전쟁이었어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독일의 민중들은 가족을 잃고 헐벗고 굶주렸으며, 나라 전체가 황폐해졌어요. 800만여 명은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지요. 어린이와 여성들은 오갈 곳 없는 신세로 전락하였고, 길에는 다친 사람, 부랑자가 넘쳤어요.
이렇게 전쟁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은 여러 나라들이 개입하여 국제 전쟁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신교가 패배하면, 신교를 믿는 덴마크와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이 신교 편에 서서 구교를 공격하였고, 구교가 패배하면, 구교를 믿는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가 구교 편에 서서 신교를 공격했어요. 프랑스는 구교를 믿는 국가였지만, 에스파냐와 오스트리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교 편으로 참전했지요.
30년 전쟁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맺으며 신교의 승리로 끝났어요. 이 조약으로 네덜란드는 에스파냐로부터 완전히 독립했고, 독일을 지배하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명예만 남게 되었지요. 스웨덴이 강대국으로 떠오른 반면, 에스파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그리고 독일의 지방 국가들이 독립하면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루터와 함께 신교를 대표하는 개혁가인 스위스의 종교 개혁가 칼뱅의 교리를 믿는 칼뱅파도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어요.
출처 :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