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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a
cola23.02.11

조선시대 때 중전이 되려면 무슨 자격을 갖춰야 했나요?

당시에는 약간 정략결혼? 식으로 중전이 정해졌다고 한 것 같은데, 왕이 원해서 고른 중전이 아니라 따로 중전 자격이 있는 사람을 뽑아서 왕과 혼인시켰던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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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이 어리지 않은 이상 왕비 간택은 대부분 계비 간택입니다.

    계비 간택의 경우 왕이 몇살이든 계비는 혼인적령기의 여성이어야 하기 때문에 세자-세자빈 내외보다도 어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비를 뽑는 시작은 시작은 간택입니다. 원래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에 불러 모아 배우자를 뽑는 제도입니다. 조선 태종 때 시작되어 세종 때 정착되었다고 하지요. 왕비의 간택은 대부분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가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왕비가 되었다고 하지요. 간택은 초간택, 재간택, 삼간택 등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며, 초간택 후보는 서른 명 내외, 재간택 후보는 다섯 명에서 일곱 명, 삼간택 후보는 세 명을 뽑고 그들 중에 한 명이 최종 선발된다고 하지요. 물론 간택은 사대부 가문의 처자 중에서 고릅니다.


  •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왕의 정비가 중전이지요. 중전은 대체로 집안이 뛰어난 양반가문에서 채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왕의 관심도 많이 들어지만 내전의 일은 욍비와 대비 등이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혼인을 일찍하는 경우가 많았고 왕실 또한 그러했습니다. 이는 아들을 안정적으로 낳는 것이 중요해서 그런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기 전 세자 자리든 아니던 일찍 부인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세자빈이었다가 세자가 왕이 되면 중전이 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왕의 외척이 정사를 그르치는 것을 경계해 신중하게 골랐습니다만, 왕실 외척이 국정을 쥐락펴락 한 때도 있었습니다. 정조 사후 순, 헌, 철종의 정치가 외척이 농단하던 세도정치였습니다. 안동 김씨 풍양 조씨의 권세는 왕실을 능가했습니다. 이를 타파한 것이 흥선대원군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