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충흔 전문가입니다.
당근의 베타카로틴이나 토마토의 라이코펜이 붉은 빛을 띠는 이유는 분자 속에 단일 결합과 이중 결합이 번갈아 늘어선 공액 이중 결합 구조 때문입니다. 유기화학에서 이중 결합은 전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는데, 이 결합들이 길게 연결되면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분자 전체로 확장됩니다. 이를 전자의 비국소화라고 부르며, 이 과정에서 전자가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라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 격차가 줄어들게 됩니다.
일반적인 유기 화합물은 이 에너지 격차가 커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외선 영역의 빛을 흡수하지만, 베타카로틴처럼 공액 구조가 길어지면 격차가 충분히 좁아져 에너지가 낮은 가시광선 영역의 빛까지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이들은 가시광선 중에서 푸른색 계열의 빛을 집중적으로 흡수합니다. 빛이 물체에 부딪혔을 때 특정 색이 흡수되면 우리 눈에는 그 색을 제외한 나머지 반사된 빛인 보색이 보이게 됩니다.
푸른색의 보색이 바로 주황색이나 붉은색이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당근과 토마토가 붉게 보이는 것입니다. 즉, 분자 내의 탄소 사슬이 길어질수록 전자의 놀이터가 넓어지고, 그에 따라 흡수하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면서 자연의 다채로운 색상이 결정되는 원리입니다. 공액 이중 결합은 단순히 탄소들의 연결을 넘어, 빛이라는 에너지를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색으로 변환해주는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