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는 백범 김구를 암살한 후 그에 대한 사회적 원한과 분노와 매우 컸습니다. 김구는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암살 이후 많은 국민들이 경교장을 찾아 애도했습니다.
안두희는 이후 감형과 석방하였으며, 군부와 정권의 비호 등으로 의혹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6년 박기서가 안두희를 살해한 사건은 사회적 정의 실현 요구가 표출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안두희는 암살 이후에도 여러 차례 테러와 위협을 받았으며, 그를 비난하는 여론이 끊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