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왕후가 고려를 적대시 했던 이유가 혹시 뭐였나요?
기황후 같은 경우 제가 알고 있기로 고려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고려에 칼을 겨눈 것으로 알고 혹시 그 배경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답변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후는 고려인으로써 고려인을 기용한건 사실이나 이게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위한 술책으로 작용했고 특히 기황후시기 초반에는 원나라에 대한 공녀착출이나 공물의 양이 줄었으나 얼마안가 원나라에서 고려양이라는 풍습이 생기면서 기황후의 눈에 들기위해 고려여자를 첩이나 부인으로 들이기시작했고 결국 다시 공녀착출이 일어나게됐습니다. 또한 공물의 양도 다시늘었구요.
거기에 기황후의 고려인등용은 또다른 문제로 작용했는데 고려인문관을 등용한게 아니라 내시들을 대거 등용한것이고 이것이 원나라의 재정을 다시금 악화시키는데 일조하게됩니다.
특히 박불화,고용보같은 같은 동향사람을 중시했는데 이들의 사치와 권력남용으로 폐단이 더욱 커졌고 특히 고용보는 고려에 와서 대놓고 뇌물을 요구하거나 고려왕을 능욕하는등 여러가지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뿐아니라 그녀의 오라비인 기철이 덕성부흥군으로 임명되게된것도 기황후의 황후책봉으로 그의 아비인 기자오가 왕으로 봉해지기때문이며 어찌됐든 고려로선 어쩔수없이 기철에게 고관대직을 줄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기철 또한 만만치않은 탐욕가에 사리사욕외엔 모르는 간신배였고 기철의 횡포로 고려는 다시 뒤흔들리게 됩니다. 정동행성을 차지한 기철이 자기멋대로 공물의 양을 늘리고 그중에 일부는 자신이 착복하는가하면 매관매직을 하여 조정을 어지럽히고 대놓고 다른이의 땅을 빼앗는등 고려로선 하등의 좋은일을 한적없는 간적으로 활동하며 이것은 결국 공민왕이 기철을 척살하는 명분으로 작용합니다.
그후의 일은 답변들을 보시면 아실거고...기황후의 고려공격외에 더한 문제는 기황후가 한 선행은 가뭄이 들어 기근이 생긴 백성들을 구휼한거와 그 백성들의 시신을 장사지내준것뿐인데 이건 사실 기황후가 했다기보단 당시 원나라에서 당연히 했어야하는 구휼책이었기에 기황후의 업적이라고하기엔 미묘하고.
그보다 더한 악행도 했으니 바로 자신의 아들에게 선위를 하라고 순제를 겁박하기 시작한겁니다. 당시 순제는 조금만 괜찮은 나라였다면 성군소리들을수있을정도로 괜찮은 왕이었고(애초 드라마에서의 바보이미지는 어이없는 짓거리였습니다. 당장 순제라는 시호는 아무한테나 내리는게 아니거늘...)원황제치고는 독특하게도 문치주의를 표방해서 망해가는 원나라를 다시일으킬려고 노력하고있었습니다만...
기황후본인의 권력에 대한 탐욕으로 멀쩡하게 있던 자신의 남편을 물러나라고 시위를 하게되고...순제는 당연히 거부하면서 둘사이가 완전히 갈라서게됩니다. 결국 수도에서 순제파와 기황후파가 내전을 벌이게되며 거기서 순제파가 이겨서 기황후를 사로잡습니다만...후에 기황후파였던 코게테무르의 반격으로 다시 기황후가 구출되고 결국 순제와 기황후가 후계를 기황후의 아들로 하는것으로 일단락시키면서 내전은 마무리됩니다만...이때쯤되면 이미 중국은 주원장의 세력이 엄청나게 강해서 명을 건국했으며 원을 북으로 밀어내고있는중이었습니다. 내전이 끝나고 얼마지나지않아 급하게 북으로 도망치게됩니다.
도망가는 와중에 기황후는 어째서 고려가 우릴 돕지않냐고 분통을 터뜨립니다만 이때 고려의 왕은 공민왕이었고 공민왕은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의 쓰레기행위를 용납못해 척살했을뿐더러 기황후에게 잘못하면 폐위당할뻔했기에 당연히 원군을 파병하지않았죠.
물론 당시 고려의 상황으로는 원군을 파병하기엔 군사력의 한계가 있던것도 있지만...그래도 이때 잠시나마 이성계의 공격으로 요동을 함락시킨적도 있던걸 생각하면 고려의 사정때문이라고는 볼수없습니다.
뭐 일생은 이정도이고...기황후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기황후는 똑똑한여자였고 요즘 말하는 소위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역이기도 했습니다. 그런점은 대단하다고 평가할수있습니다만...
문제는 기황후는 그 똑똑함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일외엔 어느것에도 하지않은 위인이었습니다. 원나라의 직접적인 멸망에 관여하지않았다고 볼수있으나 그녀의 측근들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원나라재정에 압박을 주고 민생을 흔들리게했다는것 또한 부정할수 없으며 특히 그녀의 가족들이 마음대로 비리를 저지르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데 제재를 가하지않음으로써 고려의 멸망에도 영향을 끼친점은 용서받을수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오라비와 가족들에 대한 척살을 빌미로 고려에 1만의 정병을 보내 왕을 폐위시키려한것은 명백한 반역이며 이것으로 이미 고려와 원의 관계는 단절되다시피합니다. 후에 북원이 잠시나마 고려와 연을 맺긴했으나 우왕시기에 북원과 결국 관계를 끊어버리고 명과의 사대관계를 구축합니다.
원나라 멸망에 한획을 보탠 내전또한 기황후의 악행인데 모르는이들은 단순한 권력투쟁아니냐? 하지만 권력가...특히 황가에서의 권력투쟁은 민심을 흔들리게하는 가장 큰문제점이고 특히 그게 수도에서 내전을 벌일정도에 그것의 종결도 국경을 지키던 대족장하나가 와서 끝날정도였으니 규모가 엄청났을겁니다.
당연히 이것으로 원나라 재정이 다시 한번 바닥을 치게되구요...결국 원의 멸망은 기황후의 원맨쇼는 아니었으나 기황후도 한몫을 한것은 사실입니다.
기황후대에 유일하게 고려에 잘한것은 고려에 대한 입성론을 없앴다는것이나...이것이 기황후가 잘해서라기보단 기황후의 아비인 기자오가 왕에 봉해졌고 기철 또한 부원군에 봉해진데다 정동행성의 장이 되있으니 사실상 고려에 대한 내정간섭이 가능해져서 사그라든거뿐이지 기황후가 잘해서 그렇게 된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이시대쯤되면 원나라는 외국정벌같은 거대한 군사작전은 할수없는 상황이 되며 그전에 정복했던 다른 지방의 이민족들의 난도 통제할수없는 상황에 이르게됩니다.
당장 원나라는 순제중기때만 되도 한족의 반란을 막기 힘들수준까지가며 순제말기엔 아예 수도까지 명의 세력이 차지하게되니...입성론이 없어진건 고려를 먹어치울 힘도 없었을뿐더러 괜히 고려를 건드려봐야 유일하게 남은 원군인 고려가 등돌리는 결과만 낳게 될까두려워 없앴다는게 맞습니다.(이시기에 최영과 이성계가 원나라의 원군으로 활약하면서 요동정벌도 하게되고 원의 사정과 명의 부흥을 공민왕에게 보고하게됩니다. 그후 원의 기세가 기울었다는걸 확인한 공민왕이 기철을 처형시켜버리고 기황후의 인척들을 모조리 척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