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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하마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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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게 무슨 말인가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게 제가 수능을 볼 때 지문으로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문득 떠오르는 것인데 이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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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굉장한비오리121
    굉장한비오리121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를보는 기준 그리고 역사를 읽는기준 그리고 역사를 행하는기준이

    모두 아 와 비아 의 투쟁이라는뜻인듯합니다

    신체호 선생이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자신의 역사와 다른이의 역사는 달랐고 또한 그역사의기록역시 서로 다른이들의 투쟁의기록으로남았습니다

    같은 이조시대의 이야기를두고 아와 비아가 생기며

    같은 고구려 사를 두고 아와 비아 가 생깁니다

    지금의모습역시 아 와 비아 가 생기는것입니다

    어찌보면 신채호선생께선 가장 역사에 대한 정확한 답을 주고 가신듯합니다

    역사는가장 주관적으로 해석되면서 또한 객관적인 주장에 뭍혀버리는것인듯합니다

    나의역사는 나의역사대로 흘러가고 타인의역사는 타인의역사 대로 흘러가는것이며

    그 두가지 역사들또한 또다른이의역사속에서 외곡되고 달라진 모습으로 기록되는것입니다 진실한 기록을 아무리 기록하고자 하여도 결국 자신의 개인적입 입장이 들어가게 되는것이 역사이며 그역사를또한 다른이가 잘못되었다 조작되었다라고 반론하는것이 역사입니다

    누군가는 현시국을 너무나도 좋게표현하고 기록하며 또다른 누군가는 현시국을 나쁘고 잘못된 행태로 기록한다면 후세의 후손들은 현시국에대하여 어떤기준을 가질지...

    우리모두의역사는 그러했습니다 아 와 비아의끝없는 투쟁이였고 그기록였시

    아 와 비아의끝없는투쟁이 되는것입니다

    역사가 흘러가는것도 기록되는것도 해석되는것도

    전부 나와 나아닌 다른이 그리고 우리가아닌 또다른 이들의 투쟁속에

    인정이 되는 역사와 인정이 되지못하는역사

    교과서에 기록되는역사와 학점하곤 전혀 상관없는역사

    신채호 선생께선 당시엔 꿈도꿀수없는 역사관을가지고 계셨고

    그역사관 역시 신채호선생과 당시 다른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투쟁이였습니다 그투쟁또한 우리에겐 역사의하나이니 도한 역사는 아 와 비아의역사의기록인것입니다

    나와남의역사 우리와 우리가아닌자들의 역사 그끝없는 주장들의 대립이 바로역사인것입니다

    이순신과 원균의역사의대립 고조선과 한나라 역사의대립 백제와 신라역사의대립 기록된 사서들의 모든대립들 또한 그모든기록들에대한 또다른 대립의기록이 바로 역사인것입니다

    사화를논할때의 각가지의주장들과입장들 보는견해들은 저마다 사람마다다르고 그기록또한 기록하는자가 누구를 조아했느냐에따라 저마다달라지는것입니다

    우리의역사는 가장 정확한것이없고 정확히 기록된것도없으며 옳은것도없습니다 왜냐 끝임없는 나와 남의기록의싸움이였고 나와 남의 해석의싸움이였기때문입니다

    신채호선생은 백제건국설에 소서노설을 보태어주신분이셨고

    그덕에 또한 숱한 설을만들어징수있었고 뭍혀버릴수있었던것입니다

    역사는 나와남의싸움과 나와남의 기록과 나와 남의 해석들의 그끝없는 충돌로 이루어진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난 드라마라 할수있습니다

    시작은 동일하나 결말은 수천갈레 수만갈래인..^^

    투쟁이 종식될수없는것이 분명한것입니다

    지금제가보는 현사회와 질문자님이 보는 현사회는 분명 다르기에 그투쟁은 끝이없는것입니다

    이만 부족한 답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 조선 상고사> 에 나오는 글의 내용입니다. 역사란 무엇 인가에 관해서 설명 하면서 역사란 나와 다른 이들과의 투쟁이라고 묘사 하고 있습니다. 즉 모든 인간 역사가 나 혹은 내가 아닌 다른 이 와의 투쟁에서 비롯된다는 이론 입니다. 조선과 서양열강, 자본가와 근로자, 주인과 노비 등등 모든 역사가 이렇게 나와 나아닌 다른이들과의 투쟁이라고 보았습니다.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나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니,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 미국,프랑스, 러시아등은 비아라 하지만, 영·미·프 등은 각지 제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 하며, 무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등은 각기 제 자신을 아라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하며, 이뿐만 아니라 학문에나 기술에나 직업에나 의견에나 그밖에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인 아가 있으며, 따라서 아와 대치한 비아가 있고, 아의 중에 아와 비아가 있으며 비아 중에도 또 아와 비아가 있어,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번극할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사회의 활동이 휴식될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나니,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라.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적으로 전개되고 공간적으로 펼쳐지는 정신적[心的] 활동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고,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온 상태에 관한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 하고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깊이 파고들 것 없이 쉽게 말하면, 주관적 입장에 선 쪽이 ‘아’이고 그 이외는 ‘비아’다. 예컨대 조선 사람은 조선을 ‘아’라고 하고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을 ‘비아’라 하지만, 영국·러시아·프랑스·미국 등은 각기 자기 나라를 ‘아’라고 하고 조선을 ‘비아’라 한다. 무산계급은 무산계급을 ‘아’라고 하고 지주나 자본가 등을 ‘비아’라 하지만, 지주나 자본가 등은 각기 자기 식구를 ‘아’라고 하고 무산계급을 ‘비아’라 한다. 이뿐이 아니다. 학술·기술·직업·의견 표명이나 그 밖의 무엇에서나, 주관적인 ‘아’가 있으면 ‘아’와 대립적인 ‘비아’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아’ 속에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 속에도 ‘아’와 ‘비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에 대한 ‘비아’의 접근이 빈번해질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도 더욱 더 맹렬해진다. 그러니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틈이 없고 역사의 전진이 완결될 날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에 관한 기록이다.

    ‘아’가, 그리고 ‘아’에 대비되는 ‘비아’의 ‘아’가, 역사적인 ‘아’가 되려면 두 개의 속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첫째는 시간성으로, ‘아’의 존재는 시간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는 공간성으로, ‘아’의 영향력은 공간적으로 파급되어야 한다.

    인류 이외의 다른 생물에도 ‘아’와 ‘비아’의 투쟁이 있다. 하지만 다른 생물의 경우에는 ‘아’라는 의식이 너무 미약하거나 거의 없기 때문에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사의 창출을 인류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다.

    사회를 떠나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아’와 ‘비아’의 투쟁도 없지 않지만, ‘아’의 범위가 너무 협소하면 시간성·공간성을 띨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행위일 때만 역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행위일지라도, 시간성 및 공간성의 파급력에 따라 역사적 가치의 크기가 결정된다. 예컨대 조선시대 학자 김석문이 300년 전에 지동설을 주창했다고 해서, 지오다노 부르노의 지동설만큼의 역사적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브루노의 학설은 유럽 각국의 탐험 열기를 달구고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으로 이어졌지만, 김석문의 학설은 그런 결과를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정여립이 400년 전에 군주와 신하 사이의 윤리[軍臣綱常說]를 타파하려 했던 동양의 위인이라고 하여, 《민약론》(《사회 계약론》_옮긴이)을 저술한 장자크 루소와 대등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여립의 영향을 받은 검계(노비들의 비밀결사_옮긴이)나 살주계 등의 활동이 전광석화처럼 발생하기는 했지만, 루소 이후에 파도처럼 웅장하고 격동적으로 일어난 프랑스 혁명에 비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높이면 투쟁의 승자로서 미래 역사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반면에 ‘아’가 파멸되어 ‘아’가 ‘비아’에게 바쳐지면 투쟁의 패자로서 역사의 흔적 정도로 그치고 만다.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변함없는 이치다.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인간의 인지상정이지만 기대와 달리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되는 사람들이 항상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선천적 측면을 보면 ‘아’가 생긴 뒤에 ‘비아’가 있는 것이지만, 후천적 측면을 보면 ‘비아’가 있은 뒤에 ‘아’가 생기는 것이다. 예컨대 조선 민족(아)이 출현한 뒤에 조선 민족과 상대되는 묘족·한족(漢族, 비아)이 있는 것이니, 이는 선천적 측면에 속하다. 그러나 묘족·한족이라는 대립자가 없었다면 조선이란 국명을 만든다거나 삼경(三京, 고조선의 세 도읍_옮긴이)을 만든다거나 오군(五軍, 고조선의 군사 조직_옮긴이)을 둔다든가 하는 ‘아’의 작용도 없었을 것이니, 이는 후천적 측면에 속한다. 정신적 확립을 통해 선천적 측면을 지키고, 환경적 적응을 통해 후천적 측면을 지키는 것이다. 만약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패망의 숲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대인들이 종교를 갖고도, 돌궐족이 무력을 갖고도 몰락의 화를 피하지 못한 것은 후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남미가 공화제를 갖고도, 말년의 이집트가 문예진흥을 하고도 쇠락의 환란을 구제하지 못한 것은 전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조선사를 서술하고자 한다. 조선 민족을 ‘아’로 설정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자 한다.

    (가) ‘아’의 성장·발달 과정을 서술의 제1요건으로 삼고자 한다. 최초의 문명은 어디서 기원했는지, 역대 영토는 어떻게 증감했는지, 각 시대 사상은 어떻게 변천했는지, 민족의식은 언제 가장 왕성하고 언제 가장 쇠퇴했는지, 동족인 여진족·선비족·몽골족·흉노족이 언제 분리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아’의 상태와 중흥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 등을 설명하고자 한다.

    (나) ‘아’의 대립자인 주변 각국과의 관계를 서술의 제2요건으로 삼고자 한다. ‘아’에서 분리된 흉노·선비·여진·몽골이나 ‘아’의 문화적 강보에서 성장한 일본이 ‘아’의 巨×가 되지 않은 이유, 인도에서 간접적으로 또 중국에서 직접적으로 문화를 수입한 ‘아’가 수입의 양에 따라 민족적 활기가 약해지고 강토의 범위가 줄어든 이유, 서유럽 문화와 북유럽 사상이 세계의 중심이 된 오늘날에 우리 조선이 그 문화나 사상의 노예가 되어 소멸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씹고 소화하여 신문화를 건설할 것인지 등을 각각 서술하고자 한다.

    (다) 언어·문자처럼 ‘아’의 사상을 표시하는 도구는 얼마나 정밀했으며, 그것은 어떻게 변천했는지, (라) 지금은 거의 가치가 없는 폐물이 되었지만 고대에는 분명히 민족적 흥망성쇠의 관건이었던 종교가 어떻게 변천했는지, (마) 학술·기예처럼 ‘아’의 능력을 발휘하는 분야는 어떠했는지, (바) 의식주·농업·상공업·토지 문제·화폐 제도·경제 조직 등은 어떠했는지, (사) 인민의 이동 및 증가는 어떠했으며 강역의 증감에 따라 인구는 어떻게 증감했는지, (아) 정치 제도는 어떻게 변천했는지, (자) 북진 사상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했는지, (차) 빈부귀천의 각 계급이 어떻게 상호 대항하고 투쟁했으며 그 흐름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카) 태곳적에 발생한 지방자치제가 근세에 와서 실질을 잃고 형식만 남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타) 외세의 침략으로 입은 거대한 손실과 그로 인해 얻은 얼마간의 이익은 무엇이었는지, (파) 흉노·여진족 등이 분리된 뒤에 우리와 다시 합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하) ‘아’의 문화 창조가 예로부터 적지 않은데도 항상 고립적·단편적이 되고 연속성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열심히 논증하고자 한다. ‘(다)’ 이하의 문제를 이 책의 주요 항목으로 삼아 일반 독자들이 조선사의 만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역사의 정의와 조선사의 범주 (조선상고사, 2014. 11. 28., 신채호, 김종성)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는 자기(自己), 비아는 타자(他者)를 말한다. 하지만 신채호는 자기와 타자의 투쟁이라고 하지 않고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고 했다. 아를 강조함으로써 주체성을 자각한 근대적인 민족을 형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사관(史觀) 또는 사상은 한국인이 주체형성을 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개념이다. 이것은 라캉이 말한 거울단계의 주체형성 과정과 유사하다. 다시 말해서 아와 비아라는 개념은 타자가 누구인지 상상은 하지만 자기 아닌 것에 대한 객관적 타자의식에 이르지 못한 과정적 개념이며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나가는 주체형성 과정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출처:네이버 블로그

  • 안녕하세요. 김선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와 비아의 투쟁"은 브라질의 토착민 아와 비아(Awa-Guaja) 족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활 영역인 아마존의 숲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가리킵니다.

    아와 비아 족은 대부분 아마존의 원시림에서 사냥과 채집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업, 채광, 목재 산업 등으로 인한 불법적인 삼림 파괴가 그들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재업자들과 농부들이 불법적으로 그들의 영토를 침입하며, 이로 인해 아와 비아 족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이런 상황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국제적인 압력으로 브라질 정부는 아와 비아 족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아와 비아의 투쟁"은 이런 배경 속에서, 그들의 생활 영역과 생존을 위해 이루어진 투쟁을 의미합니다. 이 투쟁은 그들 스스로의 투쟁 뿐 아니라, 환경 보호 및 토착민의 권리 보호를 위한 국제 사회의 투쟁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