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묘호에 '조'를 붙이는 경우는 왕조의 개창, 국난 극복의 업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런데 세조는 영토 확장이나 정복 때문이 아니라 아들 예종이 세조를 '나라를 중흥시킨 왕'으로 높이 평가해서입니다.
즉, 따라서 ‘조’는 태조처럼 나라를 세운 왕이나, 국가의 위기를 극복해 왕통을 다시 세운 왕에게 주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조’와 ‘종’의 구분이 절대적 규정은 아니었고, 후계자와 신료들의 정치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세조가 죽자 신료들은 처음에 신종, 예종, 성종이라는 묘호를 올렸습니다. 여기에는 '조'가 없었는데, 이는 세조가 조카인 단종에게 왕위를 찬탈한 점을 의식한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조의 앋르 예종은 아버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세조'라는 묘호를 제안했습니다. 신료들은 세종과 이름이 겹친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예종이 반복해서 요구하자 결국 세조로 확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