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과거 연맹왕국 시절 부터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기 전 까지는 유력한 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던 화백회의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귀족중심의 회의는 다른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나오는 현상이었으나 특별하게도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제를 시행했다는 것인데요. 여러 의견들이 나오는 상황에서 만장일치를 이루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유력한 귀족이나 가문이 여러명을 포섭해서 다수를 만들기는 쉬우나 만장일치를 만들기는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어떤 의견이나 정책 등이 선정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화백회의인 것 같습니다.
화백회의는 신라 6부족 연맹체제에서 출발한 회의 기구입니다. 의사 결정은 만장일치로 정하는 이는 연맹체 전통, 6부 연합에서 출발한 공동체적 합의 문화가 그대로 존속했기 때문입니다. 국론 통일의 필요, 국력이 약해 모든 세력을 모아야 전쟁을 치룰 수 있었다는 현실을 반영한 의사 결정 체제입니다. 또한 왕권 견제와 귀족 단결의 의미도 포함됩니다. 이를 통해 국왕과 귀족의 권력을 조절하는 역할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