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게대전 이후 식민지가 독립시킬때 영국과 달리 프랑스는 왜 그리 쪼잔하거나 독립시키지 않으려 집착을 한건가요?

영국도 식민지를 독립시키길 원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원만하게 이별을 했는데요.

하지만 프랑스는 왜 그리 쪼잔하게 행동을 한경우가 많을가요

프랑스 혁명이후 아이티가 독립할때 배상금을 물게 해서 백 몇십년동안 배상금을 물었고 기니가 독립할때는 인프라를 파괴하고 행ㅈㅇ문서도 불태우기도 하고 베트남에서는 독립 막으려고 전쟁 하다가 ㅇ미국이 이를인수해서 베트나전쟁가지 나고 독립했던 나라에도 빨대를 꽃아서 막대한경제적 이득을 취하는등 왜 영구과 달리 프랑스는 저렇게 한건가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사례들(아이티의 백 년 배상금,

    기니의 전구까지 빼 간 인프라 파괴,

    베트남·알제리와의 잔혹한 독립 전쟁 등)은 역사학계에서도 프랑스 식민 제국의 가장 어두운 단면으로 꼽히는

    정확한 사실들입니다.

    영국도 물론 식민지를 순순히 내준 것은 아니며

    말레이시아나 케냐 등에서 피를 흘렸지만,

    프랑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영연방(Commonwealth)'이라는 느슨한 동맹을 통해 세련되게 물러난 편입니다.

    그렇다면 왜 프랑스는 유독 이렇게 '쪼잔하고, 집착하며, 악랄하게' 행동했을까요?

    그 배경에는 프랑스라는 국가 특유의 정신적 콤플렉스와

    독특한 식민지 통치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이 남긴 극심한 '국가적 콤플렉스'

    (자존심의 상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2차 세계대전의 결과였습니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승전국'의 지위를 당당히

    유지했습니다.

    비록 국력은 쇠퇴했지만 자존심은 지켰기에,

    "이제 덩치 큰 식민지들을 실속 있게 정리하고 영연방으로

    묶어 경제적 이득만 취하자"는 현실적인

    계산이 가능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전쟁 초기 나치 독일에 단 6주 만에 항복하고 점령당하는 역대급 치욕을 겪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드골 대통령을 필두로 한 프랑스 지도부는

    "우리가 다시 강대국으로 인정받으려면 거대한

    식민 제국을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습니다.

    식민지를 잃는 것은 곧 프랑스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한다고 보았기에 미친 듯이 집착한 것입니다.

    2. 영국의 '간접 지배' vs 프랑스의 '동화 주의'

    (우리 땅이라는 착각)

    두 나라의 식민지 통치 철학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국 (간접 지배): 영국은 현지 왕이나 부족장을 내세워 세금만 잘 걷으면 그들의 문화나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남의 나라'라고 생각했기에 독립할 때도 계약 관계를 청산하듯 비교적 냉정하게 물러설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직접 지배 & 동화 주의): 프랑스는 식민지인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문화체계를 심으며

    "너희도 이제 위대한 프랑스 시민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알제리 같은 곳은 식민지가 아니라

    아예 '프랑스 본토의 일부(행정구역)'로 편입시켰습니다.

    그러다 보니 식민지가 독립하겠다고 나선 것을

    프랑스인들은 "내 신체 일부를 잘라내 가겠다는 반역" 혹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으로 받아들여

    감정적·폭력적으로 대응한 것입니다.

    3. 기니 사례로 본 "본보기(시범 케이스)" 정신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1958년 기니 독립 당시,

    프랑스는 행정 문서뿐만 아니라 전구, 전화기, 의약품까지

    파괴하고 떠났습니다.

    여기에는 "우리 품을 떠나 독립하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똑똑히 보라"는 악랄한 본보기 정치학이 숨어 있었습니다.

    다른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기니를 보고 겁을 먹어 독립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는 협박이었던 것이죠.

    4. 독립 후에도 이어진 '프랑스 아프리카(Françafrique)'

    제국주의

    프랑스는 겉으로는 독립을 시켜주면서도 뒤로는

    'CFA 프랑'이라는 식민지 화폐 제도를 강제했습니다.

    아프리카 독립국들의 중앙은행 준비금 절반을 프랑스

    국고에 강제로 예치하게 만들었고,

    국가 예산과 자원 채굴권을 프랑스 기업이

    독점하도록 계약을 묶어버렸습니다.

    만약 이 체제에 반대하는 아프리카 지도자가 나타나면

    프랑스 정보기관이 개입해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암살하는

    방식으로 최근까지도 빨대를 꽂아 막대한 이득을

    취해왔습니다.

    ●한 줄 요약

    프랑스는 나치에게 당했던 항복의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식민지에 집착했고,

    식민지를 '남'이 아닌 '프랑스의 일부'라고 착각하는

    동화주의를 고집했으며, 떠날 때조차 배신감과

    본보기 심리가 작용해 영국의 현실주의적 퇴장과

    달리 유독 쪼잔하고 잔혹한 족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 프랑스와 영국 식민지 해체 과정 차이는 단순한 성격보다 제국 운영 방식과 국내 정치 상황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프랑스는 식민지를 국가 영광, 문화적 동화 정책의 일부로 여겼고, 알제리, 베트남 등은 강경 대응을 택했습니다.

    반면에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력 약화, 국제 정세를 고려해 단계적인 독립 방식을 택한 경우가 많았어요.

    다만, 영국이 원만했다고만 보기는 다소 어려움이 있습니다. (폭력적 식민지 청산 사례 등 존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