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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노한잔
아메리카노한잔23.11.14

인조의삼전도의 굴욕이란 어떤것이었나요.?

조선시대 인조때 청나라에 의해서 조선의 왕인 인조가 당한 삼전도의 굴욕이란 어떤것인가요? 인조는 왜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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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왕인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구고두례를 하며 항복한 사건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7년 2월 24일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한양으로 빠르게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려하나 청군이 길을 막아 강화도로 갈수 없게 되었고 이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합니다.

    그러나 성내의 물자가 떨어지자 끝내 청나라와 치욕스러운 강화를 맺으니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조선 인조는 강화도로 미처 도피하지 못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청군들은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공격해왔으며 삼남직방의 지원군들은 남한산성으로 오는 과정에서 전멸을 당하게 됩니다. 남한산성에서 40여일을 버티다가 지원군도 기대할 수 없고 강화도로 피신한 왕실가족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삼전도로 나와 청 태종 앞에서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삼전도 굴욕이라고 하는데 3번 무릎꿇고 9번 머리를 조아린다는 예법입니다. 조선의 왕이 오랑캐인 여진족 앞에서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치를 당한 것입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자호란 당시 한강과 탄천이 합류하는 한강 상류 지역인 서울특별시 송파구 삼전동에 소재했던 나루터인 삼전도에서 인조가 청 태종(홍타이지)에게 항복을 한 사건입니다. 남한산성에 고립되었던 인조(1623~1649)와 대신들은 45일 만에 청나라에 항복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인조는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하면서 굴욕적인 패배를 인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