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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말똥구리
땅속의 말똥구리23.05.26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어디인가요?

요즘 주말에 극장에 가서 팝콘을 먹으며 영화보는거로 스트레스를 풀곤 하는데요.

문득 든 궁금증이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은 어디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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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5년 11월 준공된, 연극공연만을 위해 지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동양극장.
    위치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무용가 배구자의 남편 홍순언이 지음.
    이전에 연극을 할 수 있는 극장(서울 단성사, 함흥 동명극장과 명보극장, 진남포 항좌극장, 광주 광주극장, 목포 목포극장)은 모두 영화 상영을 위주로 했음.
    동양극장은 최신식 건물에 연중무휴. 개관 3년 만에 홍순언이 요절하고 결국 1976년에 문을 닫음.

    이 글은 <조선일보> 1935년 7월 7일자에 실려 있는 연출가 홍해성의 '극단의 전망'이라는 기고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극장이란 연극을 전용으로 할 수 있는 공연장을 말한다. 그리고 이때의 연극이란 물론 대사를 웅변조로 말했던 신파극을 말한다. 그 연극만을 위해 고심참담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연극 전용극장 하나 없으니 한심스럽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연극공연만을 위해 지어진 최초의 극장은 1935년 11월에 준공된 동양극장이다. 위치는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무용가 배구자의 남편 홍순언이 사재를 털어 지은 것이다.

    이 극장이 생기기 전까지 연극을 할 수 있는 극장은 서울의 단성사, 함흥의 동명극장과 명보극장, 진남포의 항좌극장, 그리고 광주의 광주극장과 목포의 목포극장뿐이었다. 그외 우미관이나 조선극장 등 대소 극장은 모두 일인들 소유였다.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신파극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대중은 연극을 통해 시대에 눈뜨기 시작했고, 그 감상의 척도는 점차 높아갔다. 그에 따라 대두된 문제가 바로 극장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극장은 모두 영화 상영을 위주로 했기 때문이다. 흥행성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극장은 한국의 극단에게 비협조적이었다. 수지가 안 맞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러한 때 연극공연만을 위해 극장이 지어지자 연극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동양극장은 건평 337평의 2층으로, 객석은 648석이었으며, 회전무대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음향효과를 위해 허공에 드리운 장막인 호리촌트까지 갖추었다. 의자는 1인용으로 접는 식이었으며, 무대 밑에는 스팀이 들어와 있었다. 또 연극이 시작될 때는 징을 쳐서 알렸다.

    말하자면 건물 자체가 최신식이어서 시골서 올라오는 사람들은 이곳을 갔다와야 서울 갔다왔다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현관에 들어서자 구두를 벗어 들고 들어오기도 했다. 바닥에 깐 타일이 매우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극장 안에서는 물론 금연이었다. 그러나 단골손님인 기생들은 태연히 앉아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기생들이 단골손님이 되었던 것은 박진이 연출하고 차홍녀가 홍도 역을 맡았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대히트를 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동양극장은 기생극장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기생을 옹호해주는 연극을 자주 했는데, 한번은 그 반대로 기생의 악질적인 면을 보여주는 연극을 했다가 명월관 기생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동양극장은 '청춘좌'라는 전속극단을 만들어놓고 이월화·석금성·조미령·김승호·주선태 등 숱한 명배우를 배출했다. 전속배우들에 대한 대우는 월급제여서 연구생으로라도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연출가로는 최독견·이운방·박진 등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월급제로 일했다. 말하자면 동양극장은 연극 전용극장이었을 뿐만 아니라, 연극배우나 연출가도 직업이 될 수 있다는 면을 보여준 최초의 극장이었다.

    공연은 연중 무휴였다. '청춘좌' 이외에도 사극 전문의 '동극좌'와 희극 전문의 '희극좌'도 조직해 번갈아가면서 공연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양극장은 개관 3년 만에 홍순언이 요절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단원들은 흩어지고, 주인이 바뀌면서 영화관이 되었으며, 1976년에는 그나마 문을 닫고 말았다. 그후 현대건설이 인수하여 사원 교육용 강당으로 사용하더니, 그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헐려버렸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문화일보사가 들어서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연극 전용극장 - 연극공연만을 위해 지어진 충정로의 명물, 동양극장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극장은 1895년 인천 애관극장입니다.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최초 극장은


    1903년에 세워졌던 원각사입니다.


    원각사는 로마식 극장을 본떠 건축되었고


    약 2천 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극장은 이인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신극 운동의 요람지로 불리며,


    상연된 작품으로 설중매, 은게계가 있습니다.


    1958년에 원각사 극장이 불화되었었으나


    화재를 겪은 후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천 애관극장의 역사는 개항기인 1895년 정치국이라는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극장 협률사(協律舍)에서 유래한다. 다큐에서, 지역 사학자들은 애관극장이 1902년 고종 황실에서 서울 정동의 야주현에 세운 개화기 대표적 서양식 극장 협률사(協律社)와 한글 명칭은 같지만, 7년이나 먼저 설립됐다고 말한다. 현대적 의미의 극장인 단성사보다 12년이나 앞선 시점에 세워진 애관극장은, 1911년 협률사에서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이 바뀐 뒤 1921년 홍사헌이라는 지역 인사가 인수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짧게 잡아도 100년이라는 세월이다.

    -출처: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