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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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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은 노예였나요?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에 왕의 무덤이었던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이 당시의 노예들이었다던데 왕의 무덤으로 알려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노예들이 지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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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는 노예 사회였지만, 노예들만이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은 아니며, 이외에도 군인, 농부, 기술자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도 노동력을 제공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대피라미드를 지을 때 쿠푸가 강제로

    노예 20만 명을 동원해서 지었다고 적었습니다.

    이게 서구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면서 20세기까지만 해도

    대피라미드는 노예의 피땀이 들어간 건축물이라는 편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피라미드 근처에서 노동자들이 살았던 마을과

    공동묘지 유적이 발굴되면서 편견이 깨지기 시작했고,

    오늘날 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로는 노예가 아닌 농부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했으며,

    그 이유는 나일강이 범람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동안

    대체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공익 사업을 겸한 것이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는 중입니다.

    쓸데없어 보일지라도 억지로나마 부를 재분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사회적으로도 입증되었고,

    지배층도 대형 건축물을 통해 본인 위신을 세우며

    백성들 일자리도 제공하는 게 사회 안정에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는 말은 가짜뉴스라고 합니다.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는 것은 오해다. 곽 소장에 따르면 피라미드를 짓는 데 동원된 건 노예가 아닌 임금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전날 과음하면 결근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파업도 했다. '파라오의 자위설'은 가짜뉴스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파라오가 군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위행위를 했다는 이야기인데, 곽 소장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설명한다.

    이집트학자가 되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이 늘었다. 곽 소장은 실력부터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집트학을 공부하려면 습득해야 하는 언어가 많다. 우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는 능숙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이집트 현지 방문을 위해선 아랍어를 공부해야 한다. 3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대 이집트의 언어는 시기별로 바뀌었기에, 자신이 연구하는 시기에 맞는 이집트어를 또 학습해야 한다. 해외 전공자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언어 교육을 철저히 받은 사람들이다. 이집트학은 상류층의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한 이유다.

    출처: 매일경제 '피라미드를 노예가 만들었다고?'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노예들도 많이 동원되었지만. 피라미드가 복잡하고 구조적으로 복잡하니 수학자 천문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도 고용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한 노동자들이 노예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강제 노동이나 노예였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나일강의 연례 홍수 시즌 동안 임시로 일한 유급 노동자였다고 제안합니다.

    일부 증거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팀으로 조직되어 음식과 주택을 제공받았으며 사망 후 존경과 명예를 담아 묻혔습니다. 근로자에게 개별 이름이 부여되었고 질병이나 부상으로 휴가를 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음을 나타내는 비문도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조건은 확실히 어려웠고 어떤 형태의 강제 노동이 관련되었을 수도 있지만, 피라미드가 노예들에 의해서만 지어졌다는 생각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로도투스는 쿠푸 왕이 대피라미드를 지을때 노예 20만명을 동원해 지었다고 적었지만 오늘날 학자들의 대체적 견해로는 노예가 아닌 농부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했으며 그 이유는 나일강이 범람하여 농사를 지을수 없는 동안 대체 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일종의 공익사업을 겸한 것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몇몇 피라미드에 낙서를 했던것이 발견되었고 피라미드 근처에서 발견된 석판 중에 노동자들의 출결현황과 결근 사유가 적인 문서에서 결근 사유로 과음으로 인한 숙취까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유민이 다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피라미드를 지은 사람들이 노예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확실한 답변이 없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에서 노예 노동이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고대 이집트의 역사서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건축 기술과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과 기술력이 필요했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자들이 노예인지 자유인인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습니다. 이집트는 고대 문명 중 하나로, 노예 제도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는 노예 제도를 지나치게 활용하지는 않았으며, 노예들에게 일정한 권리와 보호를 부여하는 등 상대적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했기 때문에,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모두 노예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 역시, 노예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인돌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이 노예인지 아니면 자유인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증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고인돌 건설은 현대의 건설 기술이나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노동력으로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의 종교관에서 그들은 사후세계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신화에서 기인한 미라를 만드는 풍습도 이의 일환입니다.


    미라를 만들어서 사후에 다시 살고 싶다는 욕망을, 왕들은 피라미드를 그들의 영원한 거처로 지정하면서 풀게 됩니다.


    또한 모든 문화권에서 볼 수 있듯이 문명이 발달하고 부족제가 국가의 형태를 띠게 되면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하여 대규모 역사를 시행하게 되는데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짓는 것이 이러한 역사의 일환이었습니다.


    왕들이 거주할 영원한 처소를 짓고 그 안에 수많은 부장품과 왕의 미라를 넣음을써 왕은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피라미드를 건설하면서 자신의 왕권을 과시하려는 과시욕이 동시에 채워지는 방법이 바로 이 피라미드 건설이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