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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

삼국지에서 방통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려주세요.

삼국지에서 방통이 제갈량과 견줄만한 천재라고 하는데 일찍 죽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방통이 남긴 업적이나 활약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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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매한크낙새25
    고매한크낙새25

    안녕하세요. 안동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통은 한나라 말기 유비(劉備) 밑의 정치가이자 신주(新州) 남부 양양현(陽陽縣)의 주민이었습니다. 별명은 봉황 새끼라는 뜻의 봉추(鳳雛)였습니다. 방통은 제갈량과 함께 유비에게 삼족오례를 받아 촉한의 건국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장비과 함께 우강을 정복하고 유비와 함께 한중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중에서 장비가 죽고 방통이 장비의 유해를 호위하다가 피난민들에게 살해당해 죽었습니다. 방통은 유비에게 많은 전략적 조언을 해주었고, 특히 적벽 전투에서 불로 공격하는 작전을 계획하여 유비의 큰 승리를 주었습니다. 방통은 종종 제갈량과 비교되지만 제갈량보다 더 강경하고 공격적인 성향인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방통은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군사 전략가 중 한명으로 꼽힙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지의 방통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가 궁금하군요.

    방통( 179년 ~ 214년)은 중국 후한 말 유비 휘하의 정치가로 자는 사원(士元)이며 형주 남군 양양현 사람입니다.

    별호는 봉황의 새끼라는 의미의 봉추이다. 인물평의 대가이면서도 제왕을 곁에서 모실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익주를 탈취할 것을 제안하여 유비의 입촉을 수행하였다. 낙성을 포위 공격하던 중 유시에 맞아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추남에, 낙봉파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통은 형세가 불리해도 주군의 뜻이

    완고하다면 쉽게 거스르지 못했던

    제갈량과는 달리 조운, 법정처럼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하여 주군을

    제지할 수 있는 강직함과 올곧은 성정을 지녔으며, 이 덕분에 유비는 방통을

    제갈량에 버금갈 정도로 후하게

    대우했다. 현대의 창작물에선 《삼국지연의》에서 그려진 제갈량에 버금가는 책략과 천재적인 면모, 비록 추남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맑고 깊었던 인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출처:나무위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후한 말기 양양(襄陽) 사람. 자는 사원(士元)이다. 제갈량(諸葛亮)과 함께 명성이 높아 봉추(鳳雛)로 불렸다. 군공조(群工曹)로 관직에 나갔다. 유비(劉備)가 형주(荊州)를 얻었을 때 휘하에서 모사(謀士)로 있었다. 뇌양령(耒陽令)이 되었지만 잘 다스리지 못해 면직되었다. 제갈량이 그의 재주를 인정해 치중종사(治中從事)에 발탁하고, 제갈량과 함께 군사중랑장(軍事中郞將)을 지냈다. 유비가 촉(蜀)으로 들어오자 계책을 올려 유장(劉璋)의 부장(部將)을 참수하고 성도(成都)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낙성(雒城)에서 포위되어 싸우다가 적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관내후(關內侯)라는 관작을 추서받았고, 시호는 정(靖)이다.

    출처 : 중국역대인명사전

  • 안녕하세요. 노인옥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통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에서 178년 출생하여 213년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유비의 책사였습니다.

    방통의 자는 사원(士元)이고 호는 봉추(鳳雛)로

    서서는 유비에게 와룡과 봉추 중 한 사람이라도 얻으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방통은 외모가 별로로 우둔해 보이기까지 하여 그의 자질을 제대로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사마휘가 그의 인물됨에 오나라 주유 휘하에서 공조로 일할 수 있게 추천했습니다.

    주유가 죽은 후 방통은 촉한 유비의 신하가 되었지만 방통의 재능보다 외모를 보고 판단한 유비는 그를 시골의 현령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장비가 그곳에 갔다가 방통의 재능을 알아보고 유비에게 천거했습니다.

    이어 그의 재주를 인정한 제갈량과 함께 군사중랑장(軍師中郞將)이 되어 유비가 촉(蜀)으로 진진했을 때 계책을 올려 익주를 얻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는 사원, 유비의 군사 입니다.

    일찍이 사마휘가 말한 복룡과 봉추 중 한사람으로 유비가 형주를 차지한 뒤 찾아가 제갈량과 군사가 되었으며 촉을 칠 때 유비와 함께 출전하나 낙봉파에서 화살에 맞아 36세에 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