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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01

춘추전국시대의 춘추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중국 여러나라 분리되어 패권을 다투던 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요. 전국시대라면 이해가 가는데 춘추는 왜 붙는것인가요

춘추전국시대의 춘추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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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0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추는 쉽게 말해 역사서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원전 5세기 초에 공자가 엮은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사서. 춘추시대 노의 은공 원년부터 애공 14년(BC 481년)까지의 사적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유학에서 오경)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춘추》는 중국 춘추시대 노의 은공 원년(BC 722년)에서 애공 14년(BC 481년)까지 12대 242년 동안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BC 770년 주왕조가 뤄양으로 천도하기 이전의 시대를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고 하는데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누어집니다.

    춘추시대는 주왕조가 도읍을 옮긴 때로부터 진나라의 대부인 한, 위, 조 삼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할 때 까지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춘추는 공자가 엮은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에서 유래, 전국은 한나라 유향이 쓴 전국책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B.C770년 주나라가 낙양으로 천도하기 이전 시대를 서주시대라 부르고 낙양 천도 후를 동주시대라 부르는데 동주시대를 춘추전국시대라고 합니다. 춘추는 진나라의 대부가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로 분할하여 다스린 시기로 B.C402년 경까지를 일컬으며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서인 춘추에서 따온 것이며 이후부터 진시황이 중국을 천하통일 한 B.C221년까지를 전국시대라고 부릅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추전국"은 "춘추전국시대"라는 시대 구분 용어가 "많은 세력이 나타나서 다툰다"는 의미로 한자성어화 된 사자성어입니다.


    ‘춘추'와 '전국'이라는 두 시대로 굳이 구분하는 이유는 혼란의 양상에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천자의 권위가 춘추시대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나 그래도 존왕양이와 봉건제도는 유지되고 있었습니다그러던 것이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그 기틀이 무너져 전쟁의 도가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종전 170여 제후국이 전국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7개 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전쟁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뜻합니다.

    여기에서 비롯하여 '춘추전국'이란 말이 나왔으며, 오늘날은 강자도 약자도 없이 혼전을 거듭하여 승패나 순위를 가릴 수 없는 상황을 일러 춘추전국이라 부릅니다.


  •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추(春秋)는 공자가 엮은 노(魯)나라의 역사서인 《춘추(春秋)》에서 유래되었고, 전국(戰國)은 한(漢)나라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방의 견융족이 주나라에 침입해 도성마저 빼앗겼을 때, 유왕의 아들 평왕(平王)은 동쪽으로 도망쳐 낙읍(지금의 낙양)을 새 도읍으로 삼았어요.(기원전 770년) 그가 동쪽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이때부터를 동주 시대라 부른답니다.


    주나라의 힘이 약해지면서 제후들은 저마다 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어요. 많은 제후국들이 제각각 힘을 키우기 시작했지요.

    제후국들은 자신들만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더 큰 세력으로 성장했어요. 그들은 영토를 넓히고 주변의 다른 민족들까지 끌어들여 나라의 덩치를 키웠지요.


    특히 제(齊)나라, 진(晉)나라, 오(吳)나라, 월(越)나라, 초(楚)나라의 성장이 두드러졌는데, 이들을 ‘춘추 5패’라 부르기도 했어요. 또한 이때를 춘추 시대1)라 말하지요.


    이들은 서로의 세력을 견제하면서 이웃 제후국을 제압하고 성장해 나갔어요. 아직 주나라의 영향력이 남아 있어서, 주나라 왕의 핑계를 대며 군사를 일으키기도 했고, 나중에는 제후를 내쫓고 권력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특히 진(晉)나라는 세 신하가 나라를 세 등분 해 쪼개 가지는 바람에 한(韓)나라, 조(趙)나라, 위(魏)나라로 나뉘었지요. 이때부터를 전국 시대2)라고 불러요.


    “의리보다는 나라의 이익을 먼저 따져야 하오.”


    춘추 시대는 명분이나 의리를 중시했지만, 전국 시대에는 나라의 이익을 더 따졌어요. 강한 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때문에 나라들 간의 영토 싸움이 이전보다 훨씬 치열했어요. 나라를 발전시키고, 키워 나가려면 더 넓은 영토가 필요했으니까요. 특히 이때, 철기가 더욱 넓게 퍼져 나가 싸움이 더 거칠고, 격렬해졌어요.


    전국 시대에는 위나라, 한나라, 조나라, 연나라, 제나라, 초나라, 진나라 등 일곱 개의 나라가 다투었어요. 이들을 통틀어 ‘전국 7웅’이라고 불렀지요.

    출처 : 처음 세계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