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이 실패하고 나서 교육, 산업을 진흥하여 실력을 양성하여 독립을 달성하자는 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 평양의 조만식 선생이 토산물 애용운동을 전개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의 농간의 가격이 오르고, 사회주의자들이 자본가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라 비판하면서 점차 시들해졌습니다.
그리고 1920년 일제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들은 고등교육의 혜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에 이승훈 선생 등이 1023년 조선민립대학설립기성회를 조직하여 대학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홍수 등 자연재해와 일제의 방해로 생각보다 모금액에 저조하면서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실력 양성 운동은 일제 식민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기 보다 경제, 문화적 토대를 통해 독립을 준비하려는 것이었으며, 현실적으로 한계와 내부 모순으로 민족 역량을 결집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