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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3

홍건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옛날에 홍건적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나요?

누가 조직했으며

그 당시에 홍건적으로 인하여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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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에 허베이성(河北省) 일대에서 일어난 한족 반란군. 홍두적·홍적입니다.

    1355년(공민왕 4) 국호를 송(宋)이라 정하고 허난성(河南省)·산시성(山西省)·산시성(陜西省) 등지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일부가 만주(滿洲) 지역으로 북진해 요동(遼東)을 점령했다가 원의 반격에 쫓기게 되자 고려를 침범하였다.

    고려에서는 이미 1354년에 원의 요청에 따라 군사 2,000명을 원에 파견한 적이 있다. 1357년에는 김득배(金得培)를 서북면홍두군왜적방어도지휘사(西北面紅頭軍倭賊防禦都指揮使)로 삼아 홍건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하지만 1359년 12월 모거경(毛居敬)이 4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쳐들어와 의주(義州)·정주(靜州)·인주(麟州)가 함락되었다. 또한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이암(李嵒)을 서북면도원수로, 경천흥(慶千興)을 부원수로, 김득배를 도지휘사로 삼아 침입을 막으려 했으나 철주(鐵州)와 서경(西京 : 平壤)이 계속해서 함락되었다.

    이에 이암 대신 이승경(李承慶)을 도원수로 삼고, 다음 해 1월에 2만 명의 군사를 보내 서경을 탈환하였다. 또 2월에는 정주·함종(咸從)·안주(安州 : 載寧)·철주 등지에서 이들을 섬멸해 모두 압록강 이북으로 몰아내었다.

    이 후 홍건적은 해로를 이용해 풍주(豊州)·봉주(鳳州)·안악(安岳)·황주(黃州)·안주 등 해안 지방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1361년 10월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 등이 10만의 무리를 이끌고 다시 고려를 침범하였다. 삭주(朔州)·이성(泥城)·무주(撫州 : 寧邊)·안주가 함락되고, 흥의역(興義驛 : 牛峰)에 이르러 개경(開京)을 위협하였다.

    이에 공민왕은 광주(廣州)를 거쳐 복주(福州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로 파천(播遷)하고 개경은 함락되었다. 그 해 12월에 고려는 복주에서 군사를 정비해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정세운(鄭世雲)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아 적을 막게 하였다.

    또한 각 도에서 20만 명의 군사를 소집하고 참지정사(參知政事) 안우(安祐)를 상원수로, 정당문학(政堂文學) 김득배를 도병마사로,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정휘(鄭暉)를 동북면도지휘사로 삼아 개경을 탈환하도록 하였다.

    다음 해 1월에 고려군은 개경에 진격해 적을 대파하고 관선생·사유 등을 잡아죽였다. 이에 적은 압록강을 건너 모두 퇴각하였다. 이 후에도 좌정승(左政丞) 유탁(柳濯)을 서북면홍적방어제군도통사(西北面紅賊防禦諸軍都統使)로, 밀직사 이순(李珣)을 도병마사로, 김한귀(金漢貴) 등 12명을 제도병마사로 삼아 재침에 대비했으나, 대대적인 침범은 없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건적


  • 잘난몽구스218
    잘난몽구스21823.05.13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말명초 화북과 강남 일대에서 일어난 한족 반란군 중 하나로 백련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봉기했으며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다닌 것에서 유래됩니다.

    홍건적은 한국의 역사와도 연관성이 있는데 여말선초 원의 토벌에 쫓겨나 2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건적은 원나라 말기에 한산동(韓山童)이라는 사람을 수장으로 뭉친 백련교도가 중심이 되어 봉기한 한족의 농민 반란군으로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홍건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홍건적은 홍적(紅賊)·홍두적(紅豆賊) 등으로도 불렸는데 중국 원나라 말기, 차별받고 가난했던 한인과 남인들이 머리에 빨간 두건을 두르고​. 일으킨 반란을. '홍건적의 난'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홍건적은 한때 중국 내에서. 세력을 크게 키웠으나, 내부 분열을 겪으며 통일 정권을 이루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