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년 진주에서 일어난 공사노비의 반란은 노역을 부과하던 향리들의 수탈에서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노비들은 향리의 집을 불태웠지만 일단 이 봉기는 진압되었습니다.
그런데 향리 정방의가 활과 화살을 들고 관아에 찾아가자 관리 전수룡은 새롭게 정방의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의심했습니다. 정방의는 증거가 없어 풀려났지만 목사 이순중이 다시 그를 붙잡아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러자 정방의 동생이 형을 구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즉 정방의 형제는 사람들을 모아 보복성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따라서 전수룡의 근거 부족한 의심과 정방의의 재체포가 민란을 정방의의 난으로 확대시켰습니다.